한 생보사 임원은 술자리에서 "내 호(號)가 하나 있는데 평을(平乙)"이라고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걸쭉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평생 을(乙)로 살고 있다"고 웃었다.

보험사의 '갑(甲)'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고객에서부터 시작해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예금보험공사 등 감독 당국,소비자원과 같은 공신력 있는 소비자단체에서부터 정체 불명의 단체들까지….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며 회사 앞에 드러눕는 고객이라도 생기면 큰 일이다.

감독 당국에 미운 털이 박히면 거미줄 규제가 가혹하게 조여든다.

"사업비 과다 책정"이라고 꼬집는 소비자단체의 비난도 근심거리다.

요즘에는 금융 가족인 은행까지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

2003년 도입된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판매) 탓이다.

"은행의 담당자가 밤 늦게 나오라고 하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게 보험사 방카담당자들의 푸념이다.

"보험료를 과다하게 받는다"는 비난도 심심치 않게 쏟아진다.

유가 급등으로 차량 운행이 감소해 교통사고가 줄어 손보사들의 이익이 늘어나는 조짐이 보이자마자 보험료를 낮추라는 압력부터 들어오고 있다.

보험권에서는 "경제논리에 어긋나는 정서법으로 보험사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보험사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보험사들이 상품을 팔 때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꾀더니 막상 보험금을 받으려고 하면 굉장히 까다롭게 굴고 인색했다는 과거의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보험맨들이 자나깨나 신뢰 회복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