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회의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전략기획실 해체로 인해 생긴 경영공백을 조기에 메우고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논의하는 자리.그런 만큼 회의에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과 삼성전자 이윤우·이기태 부회장,이수창 삼성생명 사장,김순택 삼성SDI 사장 등 주요 CEO(최고경영자) 4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뉴 삼성'의 미래를 협의하는 자리였지만 회의 분위기는 내내 무겁고 침울했다.
그룹 관계자는 "전날(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검 재판에서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성과를 설명하던 중 끝내 눈물을 흘렸던 터라 회의 분위기가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며 "특히 방청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이수빈 회장,이윤우 부회장,배정충 삼성생명 부회장 등 그룹 원로들은 착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전 회장은 1일 특검 재판에서 '삼성전자가 왜 중요한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삼성전자가 만드는 제품 가운데 11개가 세계 1위인데,우리나라에서 또 이런 회사를 다시 만들려면 10~20년이 걸려도 어려울 것"이라고 답하던 중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보였다.
20년간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올려놨지만 결국 재판정에 설 수밖에 없게 된 데 대한 회한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첫 회의를 주재한 이수빈 회장은 "위기의식을 가질 것"을 강도높게 주문했다.
그는 "현재 삼성은 이끌어 줄 선장도 방향타도 없이 각사가 독립적으로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세 가지 위기를 꼽았다.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로 삼성 특유의 빠른 결단과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스피드 경영'이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되는 '리더십의 위기',독립경영체제에서 각사 CEO들이 단기 성과에 연연해 10∼20년 후를 대비하지 못하는 '미래 먹거리 발굴 위기'가 그것이다.
또 특검 수사로 인해 삼성의 대내외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브랜드의 위기'도 지적했다.
이수빈 회장은 "과거 이 같은 위기는 이 전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전략기획실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대응하기가 어렵게 됐다"며 "각사 사장들이 새로운 각오와 책임감으로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로 이어지는 삼각편대 경영체제에서 보였던 경쟁력을 각사 독립경영체제에서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삼성은 이날 회의에서 향후 사장단협의회를 종전 수요 사장단회의와 마찬가지로 주요 계열사 CEO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매주 수요일에 열기로 결정했다.
사장단협의회 성격은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그룹의 공통 현안을 협의하는 기구'로 규정했다.
회의 주재는 이수빈 회장이 하되 이 회장 궐석시에는 이윤우 부회장과 이기태 부회장 등이 맡기로 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