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테스트 강도가 말도 못해요. KT가 얼마나 빡빡하게 굴든지,쥐어박고 싶더라고요."

통신단말기 전문 제조업체 아프로텍의 정용남 대표는 요즘도 가정용 디지털 무선전화기 'Ann폰'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 KT와 보낸 18개월을 '지옥 생활'이라고 칭하며 웃곤 한다.

지금이야 술안주 삼아 당시를 떠올리지만,하루라도 빨리 제품을 내놔야 했던 생산 책임자로서의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휴대폰 통화의 70%가 실내에서 이뤄진다는 통계가 나왔어요.

집전화기는 찬밥 신세였던 것입니다.

휴대폰 이상의 무선전화기를 만들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 아래 좀 까칠하게 밀어붙였습니다."(정한욱 KT 서비스개발본부 상무)

휴대폰의 다양한 편의 기능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시선'을 돌려 놓는 게 숙제였던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바로 휴대폰을 그대로 무선전화기에 옮겨 정면 승부를 걸자는 전략이었다.

그렇지만 개발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문자메시지 같은 부가 기능은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기술 기반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1.7㎓ 주파수 대역에서 전화기 본체로부터 100m 범위에서 간섭없이 통화가 잘 되도록 하는 게 쉽지 않았다."(정용남 대표)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7월 국내 처음으로 1.7㎓칩을 만들어 초기 모델을 완성했지만 성능 테스트가 관문이었다.

이른바 'TDR(Tear Drop Mark)' 절차.테스트의 '혹독함'을 개발자의 눈물자국에 빗대 붙인 이름이다.

"유행 변화 추세를 감안해 제품 스펙(규격,디자인,기능 등)을 자꾸 업그레이드 할 수밖에 없었죠.경쟁 업체들이 더 좋은 제품을 먼저 내놓으면 둘 다 망하잖아요.

험악한 토론 끝에 '앞으로는 서로 보지 말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호간에 감정 충돌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박기현 KT 통화서비스 매니저)

결국 석 달 반가량의 결함찾기 및 보완 작업을 거쳐 지난해 11월 내놓은 Ann폰은 절찬리에 판매됐다.

강병곤 아프로텍 전무는 "경쟁사보다 딱 두 달 빨리 국산화했는데 KT를 통해 반년도 안돼 12만2000여대를 팔아치웠다"고 말했다.

앞으로 100만대 이상의 추가판매가 예상되는 만큼 이번 사업으로 200억원 이상의 매출이 창출되는 셈이다.

10여년을 무선전화기 개발에 몰두해온 아프로텍의 생산기술과 KT의 기술 코디네이터 역할이 제대로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특히 KT는 통합문자메시지(SMS) 단문 발송 프로토콜을 중소기업에 처음 무상 제공하는 등 과감한 지원에 나서 공동 기술개발에 큰 힘이 됐다.

아프로텍은 KT와의 합작을 기반 삼아 차기작을 구상 중이다.

옆집이나 인근 사무실의 전화기를 기지국 삼아 휴대폰처럼 맘대로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는 이동형 집전화기인 '로밍폰' 개발에 나선 것.

"또 한 차례 눈물을 뺄지도 모르죠.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젠 서로의 표정만 봐도 뭘 원하는지 훤해졌으니,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정용남 대표)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