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중국 베이징.초췌한 모습의 탈북자 25명이 주중 스페인대사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중국 공안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사선을 넘는 이들의 비애는 전 세계에 중계됐고,국제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처절하게 만들었을까.

탈북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김태균 감독의 신작 '크로싱'이 오는 26일 개봉된다.

이 영화는 북한 사람들과 사회현실을 사실적으로 조망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쉬리''공동경비구역 JSA''국경의 남쪽' 등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대개 한 단면씩만 보여줬을 뿐이다.

함경도 탄광마을의 광부인 용수(차인표)와 열한살짜리 아들 준이(신명철)의 비극적인 사연은 '과연 북한의 현실이 이 정도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극적이다.

먹을 것이 없어 준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강아지를 잡아먹어야 하고,죽은 어머니의 시체는 아이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천에 싸여 짐트럭에 내팽개쳐진다.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밀입국한 뒤 우연히 한국으로 오게 된 용수,약 한번 쓰지 못한 어머니가 죽은 뒤 아버지를 찾아 중국으로 떠나는 준이.이 두 부자가 잔인하게 엇갈리고마는 결말은 안타까움을 넘어 슬픔 그 자체다.

김철영 조감독을 비롯해 동네아주머니역의 김진희,현지인 브로커역의 오연정 등 탈북자들이 대거 제작에 참여하면서 생생함이 더해졌다.

여기에 가슴 뭉클한 부정(父情)을 보여준 차인표와 때묻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신명철의 연기도 훌륭했다.

영화가 끝나면 슬픈 현실에 대한 부담이 무거운 추처럼 가슴에 매달린다.

재미를 원하는 관객들에겐 어필하기 어렵겠지만, 분단의 현실을 잘 녹여낸 좋은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12세 이상.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