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몇 편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야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별난 재주에 별난 사연들을 갖고 있지요.

그 속에서 은근슬쩍 드러나는 당시의 사회상도 흥미롭습니다.

숙종 때 승지인 조태억이 평양에 머물 때 한 기생과 눈이 맞았습니다.

질투가 심하기로 유명한 그의 부인은 그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부인의 성정을 잘 아는 조태억은 기생에게 몸을 피하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몸을 한껏 치장하고 부인을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부인이 평양으로 오는 길목 어디쯤에서 비단 치마를 입은 한 여인이 준마를 타고 백사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고는 탄복했습니다.

그 여인이 가마 앞에 다가와 아무개 기생이라고 밝히는데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부인도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너를 보니 실로 명물이라 내 어찌 손을 쓰겠느냐.우리집 영감을 잘 모시되 영감이 네게 지나치게 빠져 탈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면서 돌아갔습니다.

부채로 소녀를 꼬신 얘기도 솔깃합니다.

10여년간 홀아비로 지내던 양희수가 함경도 지방을 지나다 농사꾼의 집에 들렀습니다.

혼자 있던 열세 살짜리 낭자가 뜻밖에 정갈한 솜씨로 식사대접을 하자 그는 청홍 부채 두 자루를 주며 "이 쥘부채를 너에게 채단으로 주려는데 받겠느냐?"하고 농담을 건넸지요.

2년 뒤 소녀의 아비가 그를 찾아와 딸이 폐백을 받았으니 정혼한 것과 다름없다며 소실되기를 자청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슬기롭게 집안을 꾸려나갔고 아들 둘을 잇따라 낳았는데,그중 한 명이 조선의 명필 양사언(楊士彦)이었지요.

태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반(宋盤)에게도 부채 사연이 있군요.

미남으로 몸가짐도 단정했던 그가 시골 사또 시절 하급 관리의 딸이 총명한 것을 보고 시경의 한 구절인 "유녀회춘 길사유지(有女懷春 吉士誘之·봄을 품은 여인이 있어,멋진 사내가 꾀어가네)"를 해석해보라고 한 뒤 비단 쥘부채를 주며 "훗날 너는 나의 별실이 되거라"하고 덧붙입니다.

국문학자 간호윤씨가 풀어쓴 <<기인기사>>(푸른역사)에 나오는 얘기들입니다.

'기인기사록(奇人奇事錄)'을 현대적으로 옮긴 이 책에는 고운 마음씨로 주변을 울린 사람,21세기 로맨틱 코미디를 능가하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 등이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야담은 삶의 실개천에서 건져 올린 초승달"이라며 "고전의 창호문살을 아는 사람에게만 제대로 보인다"는 정의가 멋지게 다가옵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