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씨 '초한지' 완간 간담회에서 지적

"본질은 위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작가 이문열씨(60·사진)가 11일 소설 ≪초한지≫(전10권·민음사)의 완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촛불 집회를 두고 이렇게 정의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디지털 포퓰리즘'이라는 말은 결코 빈정대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는 "지금의 촛불 집회를 벌이는 이들의 뜻이 민의라는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민의'에는 쇠고기 재협상에 반대하는 이들이 침묵을 지켜 결국은 재협상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준 책임을 묻는 뜻도 담겨 있다.

이씨는 "정말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말을 문제없이 민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쇠고기 재협상에 반대한다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묵인했다면 그 또한 '훌륭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촛불집회가 되기 어려운 일들을 되게 만들었다는 점은 위대하게 생각하지만 정작 나라의 존망이 걸린 중요하고 큰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면 이는 더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 정부의 태도를 두둔하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상황보다 더 고약한 것은 현재의 여론이 곧 민심이라는 의견이 미심쩍어도,그런 의문을 다 덮을 만큼 정부의 대안은 안 보이고 성급함과 실수만 앞선다는 점"이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이번에 완간된 그의 소설 ≪초한지≫도 사실상 지도자의 리더십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런 발언과 무관하지 않다.

≪초한지≫는 패망한 한(韓)나라 사람 장량이 진시황을 습격하는 기원전 218년부터 항우가 자결함으로써 한 고조 유방이 다시 천하를 통일하는 기원전 202년까지의 내용을 주로 다룬다.

이후 효 문제가 한나라의 황권을 굳건히 하기까지의 줄거리를 합치면 30년간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씨는 항우를 대단한 기세를 가졌지만 자신의 뜻만 앞세운 오만함 때문에 패배한 인물,유방은 어수룩했지만 민의에 귀기울여 승리한 지도자로 그렸다.

≪초한지≫라는 이름은 명나라 시대 종산거사가 쓴 ≪서한연의≫를 우리말로 번역해 붙인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서한연의≫가 사실(史實)을 지나치게 뒤틀고 엇바꾸어 원전으로 삼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나온 그의 ≪초한지≫는 직접 ≪사기≫ ≪한서≫ ≪자치통감≫ 등을 참고해 자신의 판(版)으로 집필한 것이다.

평역이었던 ≪삼국지≫ ≪수호지≫와 다른 점이다.

그는 앞으로 쓸 작품을 몇 편 구상해 놓았지만 몇 달간은 쉬고 싶다고 말했다.

2년6개월 여간의 미국 생활을 완전히 접고 한국으로 돌아올지,좀 더 미국에 있을지도 휴식 기간에 결정할 생각이다.

그는 또 "중국 역사에 관해서는 더 쓸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한국 역사물,1980년대 젊은이들의 이야기 등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