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한국의 부촌(富村)'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프라이빗 뱅커(PB)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경 6월2일자 B1,B4∼5면 참조)를 할 때 대치동과 도곡동을 나누지 않고 '대치.도곡 라인'이라고 묶어 '넘버1' 부촌에 올린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두 개의 동(洞)으로 나뉘어져 있지만,양재천이라는 공통분모를 배경으로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역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중왕'은 따로 있다

대치동과 도곡동 안에서도 최대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아파트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총 5000가구로 이뤄진 이 단지는 재건축 재료를 바탕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강남권 집값 상승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금융자산 기준으로 최소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을 상대하는 PB들 가운데 한국 최고의 부촌으로 대치.도곡라인을 꼽으면서 은마아파트를 떠올린 사람은 거의 없다.

대치.도곡라인에 위치한 여러 단지 가운데 진정 부촌으로 꼽히는 단지는 대치동에 3개,도곡동에 3개 등 6개 정도에 불과하다.

미도.선경.우성 등 이른바 대치동 '빅3'로 꼽히는 대치동 3곳과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동부센트레빌 도곡렉슬 등이 그곳이다.

1983∼84년에 잇따라 입주한 대치동 미도.선경.우성아파트의 경우 지어진 지 30년이 다 된 노후단지이지만 강남권 전역에서도 드물게 보는 중.대형 위주의 구성으로 전통의 부촌으로 자리잡고 있다.

2000년 이후에 입주를 시작한 도곡동 일대 3개 단지는 최첨단 새 아파트라는 장점을 앞세워 최고 아파트의 반열에 올랐다.

박관일 신한은행 강남PB센터 팀장은 "타워팰리스의 경우 삼성그룹 임원,유명 연예인 등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부자들이 많이 사는 반면 대치동 미도.선경.우성의 경우 잘 알려지지 않은 큰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도.선경.우성아파트는 165㎡(50평형대) 이상 규모의 대형 가구가 이 일대 집값을 결정하는 양재천 조망이 가능한 위치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어 타워팰리스나 도곡렉슬에 비해 3.3㎡당 가격이 결코 빠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치.도곡에서는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다?

대치동에서 영업 중인 A공인 중개업소 K사장은 "같은 강남권이라도 압구정동에서는 가수 싸이 개그맨 노홍철 등 유명 연예인이 다수 배출됐다.

하지만 대치동 출신 유명 연예인은 찾아보기 어려우며,앞으로도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사장이 이런 얘기를 한 것은 '교육천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 지역 성장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대치.도곡라인이 결정적으로 '지존'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는 역시 1990년대 후반 신도시 교육 평준화 이후 이 지역에 몰아친 '사교육 광풍'의 영향이 컸다.

은마아파트 주변과 지하철3호선 대치역4거리 등에 집중적으로 위치해 있는 명문 학원들이 이 지역 집값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강남 8학군 안에서도 특히 명문으로 손꼽히는 경기.경기여고 중동 휘문 단대부속 고등학교 등을 진학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지역 집값 상승의 배경 가운데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네 주민들 역시 행정부 고위 관료라든가 교수 대기업 임원 등 교육열이 뜨거운 계층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K사장은 "재벌 오너 등 '알부자'들이 몰려사는 압구정동의 경우 자식들이 무슨 직업을 택하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강하지만,대치.도곡라인 부자들은 교육열도 강하고 명예나 평판 등을 중요시한다"며 "이 지역에서 유명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집값 결정 요인

대치.도곡라인에서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집에서 양재천과 대모산을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이곳 우성아파트의 경우 거실에서 양재천과 대모산 조망이 한꺼번에 가능한 148㎡짜리 아파트(15동)의 3.3㎡당 가격이 181㎡짜리 아파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명문고등학교 진학률이 높은 대청중학교 배정이 가능한지 여부도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가운데 하나다.

같은 면적이라도 대청중 진학 가능성이 높은 개포우성1차와 청실아파트 사이에 가격 격차가 1억원 안팎 벌어지기도 한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