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 베이징의 상징인 톈안먼 광장.

자금성 정문과 마오쩌둥의 시신 안치소가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고,서쪽으로는 인민대회당(국회의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마오쩌둥은 1949년 바로 이 곳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을 선포했다.

중국 근대사는 톈안먼 광장에 집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6월4일의 톈안먼 광장 역시 역사를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고,지나가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가방을 열어보는 공안(경찰)들의 눈길은 매서웠다.

19년 전 오늘 톈안먼 광장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6.4 톈안먼 사태'는 탱크를 앞세운 정부의 무력진압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19년 전의 톈안먼과 오늘의 톈안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당시 키워드는 '민주'였지만 지금은 '민족'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해 민주라는 말이 뒤로 물러선 것은 아니다.

정치체제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변한 것은 경제 상황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초기의 어수선함에서 벗어나 G7(선진 7개국)을 모두 합친 만큼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중국인들에겐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이 아니라 경제적 번영에 대한 자부심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티베트 독립 문제는 '중화민족의 단결과 번영을 시기하는 외국의 불순분자들'의 행위쯤으로 간주된다.

이날 톈안먼 광장에서 벌어진 불심검문이 인권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단결을 해치는 분리주의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당국 설명에 토를 다는 중국인들은 별로 없다.

영국 워릭대학의 루스 체링턴 교수(중국정치 전공)는 "현재 중국 젊은이들은 정부 권위를 인정하면 많은 경제적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경제발전이 초래한 빈부격차가 더 심각해진다면 분위기는 또 바뀔 것이다.

지금은 발전과 번영이라는 단어에 모두 취해있지만,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확산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커지게 될 때 어떤 단어가 민주와 민족의 바통을 이어 톈안먼 광장에서 들릴지 궁금하다.

베이징=조주현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