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미쳤다'고 수군대더군요.

'어떻게 붙은 고시인데 때려치우냐','하필이면 (아줌마들이나 하는) 보험설계사냐'….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제야 나와 궁합이 맞으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진짜 '좋은 직장'을 찾았으니까요."

외무고시 출신 1호 보험설계사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1998년 외시(32회)에 합격,중국 칭다오총영사관 영사를 거쳐 외교통상부 중국ㆍ몽골과에서 근무하다 최근 금호생명에 입사한 정찬운씨(35).사무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가 공무원 신분을 벗고 보험설계사로 변신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씨가 보험설계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은 시점은 올 1월.서울대 국사학과 재학 시절 미식축구부 동아리에서 한솥밥을 먹던 '잘 나가는' 후배들이 하나둘씩 보험설계사로 전업한 게 계기가 됐다.

6년 동안의 '헬스 트레이너' 생활을 거쳐 지난해 금호생명에 입사한 안주열씨(31)의 '구애'를 받고 올 1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던 문보성씨(32)와 제일기획에서 스포츠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던 김동구씨(29)가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데 자극받은 것.후배들은 "미식축구부 시절처럼 넷이 함께 호흡을 맞춰보자"며 정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사실 칭다오영사로 일하던 지난해 '계속 외무공무원으로 남아야 하는가'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영사관 직원 5명이 교민 8만5000명과 1만7000여 한국 기업을 챙기면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럴 바엔 국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 노후 설계를 도와주는 보험 일이 더 보람있겠다 싶었습니다."

후배들의 성공담은 정씨가 전직을 결심하게 된 결정타가 됐다.

미식축구부 4년 후배인 안씨는 입사 1년여 만인 올초 금호생명의 최연소 지점장으로 발탁돼 '억대 연봉' 반열에 올랐고,초보 설계사인 문씨와 김씨는 입사 3개월 만에 전 직장의 1년치 연봉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오는 7월 서기관 승진을 앞둔 상황에서 보험설계사의 걸을 걷겠다는 정씨를 지지해줄 사람은 없었다.

30년 공무원 생활을 한 아버지는 "'갑'이었던 네가 '을'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겠느냐"며 반대했고,조태영 동북아시아 국장 등 외교통상부 직원들도 적극 만류했다.

정씨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5개월이나 걸렸다"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거다.

내 성격이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만큼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설득하자 이해해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달 동안의 입문교육을 거쳐 이달부터 보험설계사로 정식 데뷔하는 정씨는 의사 법조인 등 전문직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과 공무원을 주요 타깃으로 삼을 계획이다.

"봉급쟁이들은 빠듯한 살림살이 탓에 노후를 준비할 겨를이 없잖아요.

특히 제 아버지처럼 대다수 공무원들은 연금만 믿고 노후 준비를 거의 안합니다.

자식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나면 '가난한 노년'만 남게 되는 셈이죠.박봉에도 묵묵히 일하는 우리나라 봉급쟁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노후 설계를 도울 겁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