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현씨, 8년만에 '회생' 주제로 전시


빛바랜 추억의 사진들이 전시장에 가득 걸려 있다.

마치 흑백 사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진을 보고 콩테(크레용의 일종)와 연필로 그린 그림들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국내 패션계의 '대모' 노라노(80·본명 노명자)와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데일리 미러'의 회장이었던 고(故) 비어 해롤드 로더미어(1925~1998년) 자작(子爵)의 부인 로더미어(58·한국명 이정선)이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극사실주의 작가 조덕현씨(51·이화여대 교수)의 개인전에는 노라노와 로더미어의 앨범 사진에서 '발굴'한 역사적 사실을 정교하게 묘사한 회화 및 설치 작품 38점이 걸렸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 두 여인의 사진 속에 담겨진 삶을 회화라는 도구를 통해 통시적으로 보여주는 이색 전시회다.

조씨는 과거의 사건과 인물,그를 둘러싼 자연 환경이 담긴 사진을 현대적인 조형어법으로 형상화해왔다.

그가 8년 만에 마련한 이번 개인전의 주제는 '회상'.한국에 살면서 끊임없이 새로움과 바깥 세상을 갈망했던 노라노와 영국 귀족으로 살고 있지만 한국의 전통을 그리워하는 로더미어의 일상을 통해 동서양 문명의 접점,한국과 서구의 이질적 문화의 경계를 깊숙하게 다뤘다.

1층 전시장은 노라노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을 리얼하게 표현한 작품들로 꾸몄다.

재력가이자 경성방송국 설립자였던 아버지를 비롯해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였던 어머니,외할아버지와의 즐거운 한때,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문희,결혼 3년 만에 이혼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 온 자신의 삶 등을 사진보다 더 정교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2층 전시장은 로더미어의 파란만장한 삶을 평면 및 설치,조각 작품으로 구성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후 미국과 프랑스에서의 유학생활,로더미어 자작과의 결혼,전통을 그리워하면서 자신이 회귀할 장소로 무주 백련사를 꼽은 뒷얘기 등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조씨는 "과거의 역사적 맥락과 사진 속에 포착되어 있는 개개인의 주관적인 순간들을 연결함으로써 역사와 개인,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양상을 회화적으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5일까지.(02)733-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