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 < 한성대 교수·경제학 >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주장하는 측은 미국과의 재협상을 요구하며 며칠째 계속 촛불집회를 열고 일부 참가자들은 도로를 점거하는 등 불법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직은 정부가 공권력 개입을 자제해 커다란 충돌은 없지만 작년 11월 서울 시내 도심에서 벌어진 한ㆍ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처럼 과격해질까 우려되는 가운데 현대차노조가 촛불시위에 조합차원에서 참가하기 시작하는 등 민주노총의 참여가 본격화되고 있다.

또한 두 차례나 연기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가 29일 발표되면서 민주노총은 수도권 냉동창고에 보관 중인 미국산 쇠고기의 출하 저지 투쟁에 나섰다.

노동운동이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불법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게 주장을 관철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한ㆍ미 FTA 비준을 저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쇠고기 파동을 이용하는 것은 이제는 민주노총이 그 세력에 걸맞은 책임 있는 제도권 단체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를 배반하는 행위다.

우리나라의 경제현실을 보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무역이 전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가 넘는 대외개방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거의 확정적인 오바마가 미국 노동계를 의식해 부시 대통령에게 한ㆍ미 FTA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가운데 민주노총이 한ㆍ미 FTA 비준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장서 반대하는 것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아직도 단편적이고 편협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다.

다른 나라 노동운동은 세계화라는 소용돌이를 현실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일 자동차 공장의 노조들은 동유럽으로 공장 이전을 우려해 고용보장을 전제로 임금의 동결 내지 삭감을 받아들이고,시설의 효율적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 근무조 투입에 합의하는 등 근로조건 저하를 수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운동에 대응해 이미 미국에서는 '한국의 2류 자동차를 수입하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배럴당 유가가 130달러로 치솟은 고유가 시대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침체되면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자동차회사와 연관산업의 노동자들인데 현대자동차노조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웃지 못할 현실이다.

국제관례나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로 볼 때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재협상은 가능하지 않다.

대통령도 이미 미국과의 쇠고기협상이 미숙했던 점을 인정했다.

민주노총도 이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재협상을 요구하기보다 미국에 우리 입장을 설득하는 노력과 함께 우리나라 한우를 포함한 30개월 쇠고기의 위험성을 확인하고 위험하다면 국내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대안을 강구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세계의 글로벌 기업들은 노와 사를 떠나 세계화라는 격변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부단한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정치적 조합주의를 지양하고 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 참가는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