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패권시대] 제2부 자원정책 大해부 : (2) 뒷심없는 이벤트성 외교…더 중요한 것은 '팔로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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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업진흥공사는 2006년 3월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우즈베크 남서쪽 타라시아 지역에 있는 5억달러 규모 구리광산 개발권을 따기 위해 1년여 동안 동분서주했는데,마침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크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기념 선물로 이를 내놓은 것.그러나 '뜻밖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넉 달 뒤인 그해 7월 우즈베크 정부가 '약속'을 일방적으로 철회했기 때문이다.
해당 광산을 독자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원전쟁에 '영원한 약속'은 없다
이를 놓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광진공 관계자들은 "당시 우즈베크 정부가 한마디 설명도 없이 약속을 철회한 것은 명백히 국제 관례를 무시한 자원국의 횡포"라며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분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주변 인사들의 설명은 판이했다.
이 딜(deal)에 관여했던 국내 기업인 A씨는 "광진공이 뒤처리를 소홀히 해 다 잡은 고기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당시 정치인 출신인 박양수 광진공 사장이 그해 말 전남 완도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한눈을 파는 사이 우즈베크 정부가 선뜻 내주기로 한 구리광산 개발권을 거둬들였다는 것.A씨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원전쟁터에서 영원한 약속은 없다"며 "정상 외교는 오프닝 쇼에 불과할 뿐이며 자원외교가 성과를 내려면 그 이후 팔로업(follow-up)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200명에 육박하는 수행단
광진공 사례에서 보듯 확실하고 끈질기게 후속조치를 해놓지 않으면 정상회담의 성과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2004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자원개발과 관련 7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이 중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서캄차카 유전개발사업뿐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경제인 B씨는 "그동안 우리나라 자원외교가 대내외에 실적을 과시하기 위한 행사 위주로 진행돼 왔다"며 "반짝 행사 뒤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따져보는 피드백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승수 총리의 중앙아시아 4개국 순방에서도 과거 정부에서처럼 '보여주기'식 외교 행태가 근절되지 않아 우라늄 도입 계약,잠빌광구 본계약 등 가시적 성과를 희석시켰다는 지적이다.
우선 수행단 규모.이번 순방단에는 국내 경제인 64명이 동행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다 필요해서 온 것은 아니다.
기업인 C씨는 "(정부에서) 같이 가자고 해서 나왔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사업이나 장기 비전 등을 감안해도 중앙아시아에서 할 만한 사업이 없는데도 건설ㆍ조선ㆍ플랜트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인을 대동한다는 정부 방침 때문에 부득불 자리를 비우고 따라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경제인에게는 1인당 수행원 1~2명이 따라 붙게 마련이다.
총리를 따라간 경제인 수행단이 총 190명에 육박한 것이다.
경제인 D씨는 "이 사람들이 회사에서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의전 때문에 계약 연기
첫 방문국인 우즈베크에서는 총리 중심으로 행사 일정을 짠 공무원들의 눈치보기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2일 우즈베크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나리몬 마브야노프 지질자원위원회 위원장(장관급)과 국내 자원개발 기업 신동에너콤 간에 체결 예정이던 1조원 규모의 규소광산 개발권 본계약이 한국 정부 측의 요청으로 갑자기 연기된 것.
정부 담당자는 "원래 예정에 없던 일정이 갑자기 끼어들어 어쩔 수 없이 뒤로 미루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총리에게 미리 보고되지 않은 대형 계약이 갑자기 체결될 경우 보고 라인이 문책을 받을 수 있어 아예 계약 자체를 연기토록 한 것이다.
계약 파트너인 현지 장관급 관료를 현장에서 빈손으로 돌려보낸 김윤식 신동에너콤 회장은 "자원외교를 하러 온 정부가 민간기업의 자원개발 관련 계약을 돕지는 못할망정 보고 누락을 덮기 위해 계약을 방해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흥분했다.
자원외교 순방길에 동행했던 경제인들은 한결같이 내실 있는 자원외교를 주문했다.
이휴원 신한은행 부행장은 "정부가 경제개발 노하우와 SOC(사회간접자본)기술 등을 자본과 패키지로 묶어 자원보유국과 거래하기로 한 방향은 맞지만 외교방식에는 아직 고칠 점이 많다"며 "대규모 순방단이 떠들썩하게 다니기보다는 자원보유국의 가려운 곳을 조용히 긁어주는 내실을 지향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창 해외자원개발협회 부회장도 "총리의 노력으로 지지부진하던 잠빌광구 지분양수도 계약을 타결 짓는 등 상당한 성과를 낸 게 사실"이라면서도 "이번 순방의 전반적인 과정을 되짚어 보고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는 복습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