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샐러리맨 신화' 국제약품 나종훈 사장

11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제약업계는 오랜 업력만큼이나 보수적인 색채도 짙다.

경영시스템만 봐도 전문경영인 체제보다는 '오너 경영'이 주류를 이루며 임직원들을 평가할 때는 여전히 '연공서열'이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종훈 국제약품공업 사장(50)이 2003년 4월 최고경영자(CEO)가 됐을 때 제약업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사람들은 국제약품 신임 사장이 45세에 불과하다는 점에 놀랐고 오너인 남영우 회장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말단사원 출신이란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

특히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함께 공동대표를 맡는 다른 제약사와 달리 나 사장은 단독 대표를 맡았다.

"전권을 줄테니 책임지고 일해보라"는 남 회장의 의중이 담긴 인사였던 셈이다.

나 사장은 오는 30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앞으로 3년 더 대표이사를 맡아도 되는지'를 주주들에게 묻게 된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재선임이 확실한 상황.그는 제약업계에선 드물게 세 번째 임기에 들어가는 '장수 CEO'가 될 전망이다.

지난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 본사에서 만난 나 사장은 '샐러리맨의 성공비법'을 묻는 질문에 "나는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 가운데 어느 곳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굳이 붙이자면 운이 좋은 장수인 '운장(運將)'"이라고 말했다.

"1984년 입사한 직후 한 달에도 몇 번씩 그만둘까 고민했다.

의욕적으로 기획안을 만들어 올리면 윗사람들은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니….한번은 너무 '열 받아서' 담당 부장의 멱살을 잡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이 입사 3년 만에 됐던 계장을 5년이 지나서야 달았다.

"

하지만 경영진들은 의욕 넘치는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당시 나 사장은 자신이 제안한 신규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미국을 방문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업무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90년 과장,1994년 차장,1996년 부장을 거쳐 2000년 이사대우로 승진했다.

이사대우로 승진할 때는 남 회장이 직접 불러 "지금까지 기획 마케팅 등 온실에서만 자랐으니 이제 잡초처럼 일하라"며 영업으로 내보냈다.

'CEO 코스'를 밟게 해준 것이다.

영업에서도 좋은 성과를 낸 그는 2001년 상무,2002년 부사장,2003년 사장 등 매년 직급을 바꿔달았다.

나 사장은 초고속 승진과 CEO로 롱런하는 배경에 대해 "스스로 약속한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세운 원칙인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 일할 것 △언제나 호기심을 가질 것 △여러 업계에 '멘토'를 많이 둘 것 △주변 사람을 자주 칭찬하고 배려할 것 △기회가 될 때마다 확실하게 쉴 것 등을 오랜 세월 지키다 보니 알게모르게 적극성과 상상력,유연성,친화력 등이 쌓였다는 것.그는 "책에서 좋은 글귀를 찾으면 수첩에 메모한 뒤 시간이 날 때마다 되새긴다"며 "좋은 글귀대로 생활화하면 어느덧 인생이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 사장은 국제약품의 향후 전략에 대해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등으로 인한 위기상황을 사업 다각화를 통해 극복해나갈 것"이라며 "올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지난 회계연도보다 15% 이상 늘어난 1200억원 매출을 달성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