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증기금은 지난 20일부터 이사장 공모에 들어갔다.

마감일은 26일.하지만 공모에 들어간 지 이틀 만인 21일 오후 느닷없이 공모기간을 다음 달 4일까지로 일주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경영 공백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서둘러 공모 절차에 착수했지만 수많은 공공기관이 동시다발적으로 최고경영자(CEO) 공모에 나서면서 유능한 후보가 참여하지 않을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응모자는 한 사람도 없다.

CEO 공모가 연기되거나 재공모 절차에 들어가는 건 기보만이 아니다.

주택금융공사와 KOTRA에는 각각 2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는데도 적임자를 고르지 못해 다시 공모 절차를 밟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공모 불발…왜?

주택금융공사와 KOTRA의 임원추천위원회는 후보자를 3~5배수로 압축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와 청와대에 최종 선정을 요청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택금융공사 후보로 은행이나 대기업 임원,중소기업 사장,전직 교수 등 22명이 지원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과거 같으면 될성부른 후보의 이름이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공모 절차에 앞서 청와대로부터 '낙점'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며 "이번 공모에는 이런 과정이 완전히 생략되면서 수많은 후보가 몰려들고 있지만 정작 적합한 인물이 응모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공모 절차를 투명화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투명화가 유능한 인재를 고를 수 있는 전략적인 선택을 제약하기도 한다"며 "투명화가 반드시 좋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와 경영혁신도 민간 전문가들이 꺼리는 요인이다.

공기업 CEO가 되면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노조와의 마찰 등 골치 아픈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사 검증 기능이 있는 청와대가 공모 과정에 신경을 쓰지 않는 까닭에 검증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와 KOTRA의 첫 공모가 불발된 것도 청와대가 막판에야 도덕성 검증에 나섰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기업 CEO 메리트도 적어

공기업 CEO의 메리트도 예전 같지 않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공공기관 계약경영제 실시방안'에 따르면 금융공기업 CEO의 연봉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또 모든 공기업은 1년 단위의 경영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성과가 미흡할 때는 퇴출될 수도 있다.

금융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민간의 유능한 사람 가운데 연봉을 대폭 깎이면서까지 공기업으로 옮겨오려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쪽 자리라면 모를까 공기업은 경력 관리에 유리한 것도 아니고 연임된다는 보장도 없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인사방침 '오락가락'

청와대는 공기업 CEO 인선과 관련해 당초 △새 정부의 국정철학 공유 △민간 전문가 배려 △관료 출신 배제 △낙선 인사 배제 △참여정부 인사 배제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금융공기업 재신임 과정에서 "관료라고 해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물러섰다.

최근에는 '참여정부 때 임명됐던 인물을 배제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도 "전문성과 능력 여하에 따라 선별적으로 적용할 문제"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공기업 CEO로 적합한 인력의 풀이 예상 외로 좁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