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고유가로 휘청거리고 있다.

한동안 잘나가던 글로벌 증시엔 급제동이 걸렸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국제 유가의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으로 휘청거리던 세계 경제는 또다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월가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가 조만간 배럴당 15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2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7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133.17달러로 마감,전날보다 4.19달러(3.3%) 상승했다.

WTI는 장 마감 후 전자 거래에서 배럴당 135달러를 돌파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다.

국제 유가는 지난 1월2일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이후 5개월도 채 안 돼 33% 뛰었다.

이처럼 국제 유가가 거침없는 뜀박질을 지속함에 따라 뉴욕 증시와 유럽 증시 등은 급락세를 나타냈다.

이날 다우지수는 1.77% 하락한 12,601.19로 마감됐다.

나스닥지수와 S&P500지수도 각각 1.77%와 1.61% 뒷걸음질 쳤다.

일부 투자자들은 투매 현상을 보였으며 프랑스와 인도네시아에서는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프랑스 어민들은 선박 연료로 사용되는 디젤유(경유)의 가격이 크게 뛰자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연일 시위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날 파리 농수산부 청사 앞에서는 200여명의 어민들과 경찰이 충돌,3명의 경찰관이 부상했다.

남부 보르도 지방에서는 어민들이 유류 저장고를 점령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국제 유가의 급등세가 이어질 경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는 다시 한번 크게 휘청거릴 공산이 크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 소비가 위축되고 소비 위축은 경제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해 FRB는 이날 공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통해 올해 미 경제성장률을 0.3~1.2%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1월 전망치(1.3~2.0%)에 비하면 1%포인트가량 낮춰 잡은 셈이다.

반면 소비자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당초 예상보다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FRB는 특히 "앞으로 경기가 둔화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해 당분간 기준 금리를 동결할 방침임을 분명히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억제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임을 공인한 셈이다.

국제 유가의 상승세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투기적 수요가 아닌 수급 불균형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의 원유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산유국들은 달러화 약세를 의식해 증산을 꺼리고 있어 수급 불균형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미 오는 9월로 예정된 정례 석유장관회의 이전에는 증산하지 않기로 공언한 상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2015년엔 하루 1250만배럴의 원유가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대부분 금융회사들은 유가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얼마 전 향후 2년 내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던 골드만삭스는 2분기 전망치도 141달러로 올려 잡았다.

원유시장 권위자로 꼽히는 대니얼 여진 케임브리지 에너지 연구소장은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15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커머디티워런츠의 로원 멘지스 분석가는 "우리는 1970년대 오일 쇼크를 다시 목격하고 있다"며 "유가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