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은 '도시재개발 이대론 안된다'시리즈를 결산하고, 대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좌담회를 가졌다.

지난 20일 본사 17층 회의실에서 본지 건설부동산부 박영신 차장의 사회로 2시간 동안 진행된 좌담회에는 신영섭 서울 마포구청장 등 도시재개발 관계자 5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도시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선진국처럼 별도의 국가기구를 설립, 모든 시민이 공생하는 경쟁력 있는 도시로 재생될 수 있도록 현행 재개발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신 차장(사회) =본지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지분 쪼개기나 집값 폭등, 소형주택 멸실, 세입자 이탈 등 현행 재개발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은 우리도 이해 관계자를 조정하는데 어려움이 많겠지만 재개발 체계를 선진국형으로 바꿔볼 때가 되지 않았나.

◆장영희 연구위원 =현행 재개발은 1983년부터 도입된 합동 재개발 방식과 거의 같다.

즉 토지 소유주로 이뤄진 조합이 부지를 제공하면 시공사는 자금을 지원해 개발하고 이익을 나누는 형태다.

당시 지자체나 노후주택 밀집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비용을 직접 부담할 형편이 못됐다.

이러다 보니 모든 재개발구역에서는 천편일률적인 고층 아파트만 양산됐다.

기반시설 구축도 부실했다.

수익 위주의 주택 물량 확대에만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2500가구가 넘으면 학교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재개발구역에서는 지역을 쪼개 편법으로 사업 추진을 하는 사례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이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지역을 광역화하고 기반시설을 확보한 뒤 사업을 진행하자는 뉴타운이 등장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기반시설 비용은 민간이 부담하는 구조다.

◆사회 =국내에선 재개발이 되고 나면 당초 집과 땅을 가진 원주민을 뺀 대부분의 원주민이 사라진다는 게 선진국과 크게 다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원주민 재정착률이 거의 80~100%에 이른다.

◆김일환 과장 =동의한다.

재개발이 돈 문제와 직결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자기 땅이라 하더라도 거기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대체로 자신의 것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기 땅을 국가에서 수용한다고 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한다.

토지 소유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임서환 연구위원 =한국처럼 재개발을 통해 단기간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외국에도 있다면 거기도 투기가 성행할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과거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투기가 벌어진 경험을 했다.

이후 공영개발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우리는 투기를 유발하는 민간주도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조합과 건설 업체가 수익이 없다고 하면 그때마다 지자체와 정부가 용적률을 높여주다 보니 이제는 개발 밀도가 너무 높아져 버렸다.

즉 용적률이나 층고가 좀 낮아야 공공.민간의 절충영역이 생길텐데 현 상황에서는 협상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 공영개발을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이라도 국가.지자체는 도시 개발밀도를 낮추고 계획적인 컨트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신영섭 구청장 =재개발로 인해 밀려나는 이들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원주민이 아닌 영세민이나 세입자다.

이는 일선 행정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픈 문제다.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세입자와 집주인, 조합간부 등 주민들 간 갈등이 심화된다.

이들이 구청에 몰려와 시위를 자주하는 바람에 구청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역시 관건은 개발이익이다.

이 같은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지자체는 현재 법적 권한이 전혀 없다.

◆장영희 연구위원 =구청에서는 권한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현행 제도 하에서 재개발 기본계획은 구청이 수립하도록 돼 있다.

세입자 문제를 제외하고는 구청과 조합은 이해관계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구청도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은근히 동조하는 느낌이다.

개발이 빨리되면 구청의 세수 등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일선 구청이 진정 세입자 문제를 생각한다면 소신있는 행정이 필요하다.

적어도 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조합에다 소형 평형을 확대하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신영섭 구청장 =장 연구위원이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조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는 어렵다.

기본계획에 대한 승인권은 광역 지자체인 서울시가 갖고 있다.

따라서 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일선 지자체인 구청과 서울시 간 '핑퐁 게임'이 벌어진다.

즉 용적률이나 층고 등에서 제약이 많고,조금이라도 민감한 문제로 들어가면 구청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세입자 문제 등을 포함해 기본계획을 짤 때는 기초단체가 아닌 광역단체가 좀더 넓은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윤도선 회장 =재개발 사업을 할 때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안된다.

소형 주택을 지으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청에서 소형 주택 짓는 게 마치 성공인 양 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수익성이 안나오는 재개발을 하자면 공공의 역할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할을 현재의 주공.토공이 맡는 건 문제가 있다.

차라리 지자체가 직접 한다면 찬성이다.

토공.주공은 현재의 민간과 큰 차이가 없다.

◆임서환 연구위원 =재개발을 주공.토공이 일부 담당한다면 개발이익과 비용의 배분을 광역화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과 별 차이가 없다는 윤 회장의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행보다 공공기관이 주체가 되어 하는 공영재개발을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공공기관의 범주를 선진국처럼 지자체, 주공.토공 등 공기업,비영리 단체까지 늘려야 한다.

이들과 민간이 합동으로 하는 민·관 혼합 사업도 확대 도입해야한다.

물론 여기에서도 수익성은 기본이다.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수익성이 없으면 못한다.

◆장영희 연구위원 =공공개발의 형태로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공공기관이 토지를 전면 수용해서 개발하는 은평뉴타운 식이 첫번째다.

하지만 국가.지자체의 부담이 워낙 크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로는 임 연구위원의 말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이 조합과 파트너십을 이뤄 공공역할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민간조합에 초기 사업자금을 보증하거나 향후 늘어날 재산세를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하위개념의 공영개발은 조합의 투명한 경영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조합을 법인화하고 매년 회계감사를 받도록 해서 조합원에게 그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김일환 과장 =여러분의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현재 국토부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령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공영개발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임 연구원이 말한 것처럼 어느 정도 틀을 갖추는 단계까지는 국가나 지자체 또는 공공기관이 직접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첫 단추를 잘 꿰고 나면 그 다음부터 민간에 맡겨둬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회 =이를 위해 외국처럼 재개발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할 국가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지 않나.

◆김일환 과장 =우리 역시 신도시 개발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는 도시 재개발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은 도시재생 전담기구를 별도 설립.운영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정리=이호기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