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더멘털(기초여건)이고 뭐고 따지지 않는 '묻지마 달러매수' 주문이 폭증했다."(외국계 은행의 외환딜러)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1050원에 육박하자 딜러들은 한목소리로 이같이 상황을 분석했다.

최근 환율이 연일 상승세를 보이면서 한번쯤 조정을 예상했는데 이 같은 예상이 빗나가자 일단 '달러를 사고보자'는 심리가 더욱 확산됐고 그 결과 환율 상승폭이 커졌다는 것이다.

◆정유사 결제 수요가 급등 진앙지

이날 환율 급등의 진앙지는 정유사들의 결제 수요였다.

경상수지 적자 지속과 외국인의 배당금 송금 수요 등 기존의 환율 상승 요인이 여전히 살아 있는 가운데 최근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결제 금액이 늘어난 정유사들이 달러 매수를 급격히 늘렸고 이것이 외환시장의 달러 부족 현상을 심화시킨 것이다.

사실 연초만 해도 정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작년 말부터 연초까지 환율 하락 전망이 대세를 이루면서 조선사 등 수출업체들이 수출대금으로 받거나 받기로 한 달러를 미리 매도했고 정유사 등 달러가 필요한 업체들은 달러 매수를 뒤로 미뤘다.

이에 따라 서울 외환시장에선 환율 하락 압력이 커졌고 원ㆍ달러 환율도 900원대 초반을 맴돌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180도 뒤바뀌었다.

환율이 네 자릿수에 안착하면서 수입업체는 한시가 급해졌다.

달러 결제를 미룰수록 원화로 표시한 수입대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환율이 계속 오르자 정유사들이 다급해졌다"며 "가격 불문하고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달러를 사둬야 한다는 심리가 팽배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수출업체들은 이미 달러를 대부분 처분한 상태인데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달러에 대해서는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매도를 미루고 있다.

향후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이진우 NH선물 금융공학실장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달러가 부족하다"며 "2005년 전고점인 1065원까지는 쉽게 갈 것 같고 금년중에 1100원 선도 넘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김재은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외환당국이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환율이 단기적으로 1050원 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국제유가가 안정되고 환율도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불안 가중될듯

환율 상승으로 당장 물가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가뜩이나 물가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환율마저 오르면 물가 급등세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이날 금리 동결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물가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는 핵심 요인으로 유가와 환율을 꼽았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3월 수입물가 상승률 28.0% 가운데 7.0%포인트가 환율 효과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원ㆍ달러 환율이 급등하면 원화로 표시한 수입가격이 큰 폭으로 치솟고 이것이 물가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는 의미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