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를 두고 스님이 개간한 땅이 2000평이나 됐다.

절 아래 속인들이 스님의 천진한 마음을 이용해 이땅을 헐값에 샀다.

상좌들이 "스님,그 돈은 두 마지기 값밖에 안 됩니다"라며 원망하듯 말하자 스님은 이렇게 꾸짖었다. "이 녀석들아! 논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여기 두 마지기 값이 있으니 번 것이 아니냐? 사문은 욕심이 없어야 해."

혜월 스님(1861~1937년)이 부산 선암사 조실로 있을 때의 일화다.

손해가 너무 크다고 상좌들이 불평하자 스님은 "인간의 마음 속에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지 않느냐"며 '무심도인'다운 경지를 내보였다.

근대 한국 선(禪)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선사를 비롯한 근·현대 불교 선지식 13명의 깨어있는 삶과 정신을 담은 선문답 해설서 '선답-진리를 묻고 깨달음을 답하다'(김성우 지음,은행나무)가 출간됐다.

이 책에는 '경허의 세 달'로 불리는 수월·혜월·만공과 한암·용성·경봉·춘성·전강·혜암·서옹,지난 3월 입적한 수덕사 전 방장 원담 스님과 조계종 전계대화상 성수 스님 등의 선문답과 일화가 실려 있다.

어떤 학인과 만공선사의 문답이다.

"불법이 어디 있습니까?" "네 눈앞에 있느니라." "눈앞에 있다면 왜 저에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너에게는 너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느니라."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너만 있어도 안 보이는데 나까지 있다면 더욱 보지 못하느니라." "나도 없고 스님도 없으면 볼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도 없고 너도 없는데 보려고 하는 자는 누구냐?"

진리가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은 '나'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만공 선사는 가르친다.

더구나 '나'에 대한 집착에다 나,너를 가리는 분별심까지 더해지면 진리와는 더욱 멀어진다.

흔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선문답같다'고 하지만 실상 선문답은 집착과 분별을 떠난 일상의 진리를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젊은 스님의 물음에 경허 스님은 "그대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게.착함이건 악함이건 하고 싶은 일이면 무엇이든 다 하게.망설임과 후회만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하게.바로 이것이 산다는 것일세"라고 답했다.

"불법은 애써 공을 들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상대로 아무 일 없는 것이다. 똥 싸고 오줌 누며,옷 입고 밥 먹으며,피곤하면 눕는 것"이라고 했던 임제선사의 말처럼 일상에서 대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펼치는 선사들의 삶은 그 자체가 법문이다.

경허 스님은 만년에 스님이나 선사의 굴레도 벗어버린 채 마을 훈장을 하며 '저잣거리 보살행'을 실천했고,제자인 수월 스님 또한 간도에서 고향을 떠난 동포들에게 짚신과 주먹밥을 보시하며 살았다.

저자는 "선사들의 생생한 법거량(선문답)은 불법(佛法)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깨달음의 삶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근현대 고승들의 천둥과 벼락같은 선문답이 수행자의 안목을 높여주고 단박에 깨닫는 기연(機緣)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