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성남 판교신도시의 A건설사 현장.내년 5월 입주를 앞두고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10여대의 타워크레인이 연신 호이스트(물건을 들어올리는 고리모양의 부분)의 줄을 상하좌우로 이동해 가며 건설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오후 4시가 가까워지자 타워크레인들이 하나둘씩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타워크레인 조종석에서 운전자들이 일제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현장을 빠져나갔다.

크레인 작업이 중지되자 공사 현장에선 모든 공정이 멈춰섰다.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 제2지구의 B건설사 아파트 건설 현장도 사정은 마찬가지.B건설사는 9대의 타워크레인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운전자가 3명,비노조 운전자가 6명이지만 오후 4시가 되자 모든 크레인이 정지됐다.

5월부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운전자 근무시간이 하루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2시간 줄어들면서 공사 지연이 현실화될 조짐이다.

작년 6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임금 삭감 없는 주44시간 근무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이에 사용자인 한국타워크레인협동조합 및 개별 임대업체는 올 5월1일부터 시행키로 노조 측과 합의했다.

최근 민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운전자들은 시간 외 근무를 일체 거부하고 있는데다 일부 비(非)노조 운전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어 오후 4시 이후부터는 작업이 전면 중단되는 공사 현장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현장에서는 민주노총 소속 운전자 대신 오후 4시 이후에도 일할 의사가 있는 비노조 운전자들을 활용하려는 건설사 측과 민주노총 간 갈등도 빚어지고 있다.

은평뉴타운 2지구 C건설사 공사 현장 앞에는 6일부터 오후 4시가 되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관계자 10여명이 봉고차를 세워놓고 민중가요를 큰 소리로 틀어 놓은 채 집회를 열고 있다.

C건설사가 당초에 고용키로 약속했던 민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운전자 대신 예정에 없던 비노조 운전자를 고용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은 그러나 1일 8시간 근무를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문제가 조만간 타결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의 이기봉 강북지회장은 "주44시간 근무가 정착화된다면 이후부터는 초과 근무수당을 받으면서 오후 4시 이후에도 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타워크레인 근로 단축에 대비하지 못한 잘못도 있다"면서도 "건설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사정이 어려운데 하루 빨리 문제가 해결돼 건설 현장이 정상화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