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친구 삼아 일상의 행복을 담금질해 왔는데 벌써 팔순을 앞두고 있네요.

요즘도 무표제 음악 같은 돌 앞에만 서면 아련한 행복감이 나를 깨우거든요.

작업을 안 하면 오히려 몸이 찌뿌듯하더라고요."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7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는 국내 돌조각 개척자 전뢰진씨(79.예술원 회원)는 "돌 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형 작업을 여지껏 '고난의 꽃'으로 생각했다"며 "고달픈 삶 속에서도 조각가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 온 것이 아무나 접근하기 어려운 '별다른 세계'라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전씨는 요즘도 관악구 신림동의 작업실로 매일 출근해 6~8시간 정도 작업한다.

그렇게 작업실에 앉아 있어야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조각은 대상이 준 감동을 돌에 옮기는 작업.50년의 세월에 비해 작품 수가 적기로도 유명하다.

해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지금까지 완성한 작품이 500여점에 그칠 정도.

전씨는 원래 '물방울 화가' 김창열씨 등과 함께 그림을 배운 화가였다.

서울대 미술학부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홍대에 편입학했다.

당시 스승인 윤효중(1917~1967년)의 부탁으로 석공들을 감독하다 만든 작품이 한국미술협회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고,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이 작품이 선물로 전달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돌조각은 나의 숙명이지요.

내 이름 가운데 '뢰(石雷)'는 '돌을 굴려 내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거든요.

돌이 매력 있기 때문에 돌을 다루면 내 마음도 유순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만 작품세계와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고 찾는 이가 없어 고독하다면 그 역시 숙명이지요."

그의 석조각에서는 동심의 미감이 풍겨난다.

조각된 인물은 늘씬한 서양의 8등신이 아니라 땅딸막하고 귀여운 6등신, 심지어 5등신이다.

격렬한 몸짓보다는 행복한 자태가 돌 표면으로 흐른다.

그의 대표작은 부산 태종대의 '모자상'.

가족의 행복을 매끄럽게 새긴 이 작품이 태종대에 설치되자 당시 빈발했던 자살자가 크게 줄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번 전시에는 전씨의 조각 13점과 작업 구상 단계에서 그린 드로잉 20여점이 나왔으며 이미 작고한 유영교를 비롯해 강관욱 고정수 김경옥 한진섭 김성복 등 제자들의 작품 6점도 함께 전시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