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10) 매표화학 ‥ 국새도 인감도장도 '매票인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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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한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매표인주라고 아시나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한 네티즌이 장충동 뒷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찍은 매표화학 사무실 간판 사진을 올리고 '이곳이 그 유명한 매표인주를 만드는 곳'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블로그는 네티즌의 관심 아래 검색순위 2위에 올랐다.
'내 책상 위에 있는 인주도 매표네'라는 댓글도 300여개가 달렸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표는 인주와 스탬프의 대명사로서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인주의 80%가 '매票' 글자가 새겨진 인주통에 담겨 있다.
매표인주를 쓰는 것은 국새도 마찬가지다.
최윤석 대표(44)는 "매표화학이 대를 이어 인주를 생산하는 것 못지않게 가정마다 우리가 만든 인주를 대를 이어 사용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서울 한복판에서 창업
매표화학은 1946년 6월15일 창업주인 최상봉 전 사장(2007년 작고)이 서울 중구 쌍림동 231에서 삼성화학공업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 회사는 1964년 장충동 뒷골목 한옥집으로 이전하면서 사명을 매표화학공업사로 바꾸었고 2000년 8월 매표화학으로 변경했다.
1960년대만 해도 동물 이름을 상호에 넣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창업주가 '하늘의 왕'인 매를 상호로 선택했다고 한다.
창업주는 중국 베이징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해방 후 국내로 돌아온 뒤 볼펜과 같은 문구류가 귀한 것에 착안,문구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회사들의 공문서마다 도장이 날인되는 것을 보고 인주 생산에 전념했다.
경제성장과 함께 수요가 계속 늘어 인주는 만들자마자 날개 돋힌듯 팔려나갔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연간 인주 100만개와 스탬프 500만개를 판매하면서 매년 70억~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문구 산업 육성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에는 동탑산업훈장도 받았다.
지난해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후 외아들인 최 대표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최 대표는 대학 졸업 후 20년 동안 부친을 모시며 일했기 때문에 가업승계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최 대표는 인주공장의 생산라인 직원으로 시작해 전국의 문구 도매상에 인주를 납품하는 영업과장을 거치는 등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는 "선친은 어떤 지시를 하기보다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면서 "선친의 행동 하나하나가 최고의 가르침이었다"고 말했다.
매표화학은 '사업의 외형보다는 내실을 중요시하라'는 창업주의 뜻에 따라 60년 동안 단 한번도 은행에서 돈을 빌린 적이 없다.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던 외환위기 당시에도 직원 월급 날짜나 협력업체 대금지급일을 단 하루도 어기지 않았다.
◆"종합문구회사로 도약할 것"
인주는 기름,쑥,안료,솜 등 10여가지 재료로 생산된다.
회사 설립 당시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반죽해서 만들었다.
현재 일부 공정은 자동화됐지만 아직도 전체 공정의 절반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인주도 일품요리처럼 숙련된 장인의 손끝을 거쳐야만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이 회사의 정년은 70세다.
50여명의 임직원 중 3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10여명이 넘는다.
18세에 입사했던 김주한 공장장(70)이 결혼할 때 창업주가 주례를 섰다.
김 공장장의 아들이 결혼할 때에도 창업주가 주례를 맡았을 정도로 가족적인 회사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매표화학은 2000년대 이후 서명이 보편화되고 전자결재가 많아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요 감소로 인주 생산량이 연 30만개로 줄고 스탬프 생산도 300만개로 떨어져 매출이 30억~40억원대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재료비와 인건비 등이 많이 올라갔지만 인주가격을 200원에서 올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최 대표는 500여개의 도매 거래선과 '매표'라는 상품명이 주는 신뢰감을 활용,종합문구회사로의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스탬프를 고급화하고 제품라인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또 젊은층에 다가갈 수 있거나 차별화된 신상품을 기획 중이다.
올해 초 출시한 '18m 수정테이프'는 일반적인 '12m 수정테이프'보다 용량을 50% 늘렸으면서도 가격은 동일하게 책정했다.
최 대표는 "인주가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없어선 안 되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내 아들, 내 아들의 아들도 계속 매표인주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