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재정의 누적적립금은 2005년만 해도 1조25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당기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지난해 말 8951억원까지 줄었다.

올해도 1433억원의 당기적자가 예상돼 누적적립금이 그만큼 줄어들 전망이다.

내년엔 설상가상이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급여비 부담이 6600억원이나 늘어나는 데다 전체 급여비 지출 증가분까지 감안하면 건보재정은 의약분업 여파로 재정이 파탄났던 2001년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제2의 건강보험 위기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일각에서는 보험료를 대폭 올리고,담뱃값을 인상해 재정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 대책은 국민 부담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차상위계층에 대한 의료비를 다시 국고에서 지원해 건보재정 악화를 최대한 둔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건보재정 부담 눈덩이

지난해 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는 관련법을 개정해 2004년부터 국고에서 지원하던 차상위계층 의료비를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으로 편입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차상위계층에 속한 혈우병 등 희귀난치병 질환자 2만2000명에 대한 의료비를 이달부터 건보재정에서 부담하고 있다.

이로 인한 추가 부담은 연간 2800억원,올해엔 그 절반 수준인 1400억원이 필요하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올해 건보재정의 균형재정을 목표로 잡았지만 차상위계층의 건보 전환이 이뤄지면서 건보재정은 1433억원 당기 적자가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내년 1월부터는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 8만8000명과 18세 미만 아동 13만1000명 등 21만9000명의 차상위계층이 건보로 추가 편입된다.

이렇게 되면 차상위 계층에 대한 급여비 지출 규모는 6600억원으로 급증하게 된다.

다른 가입자들의 급여비 지출 증가분까지 감안하면 올 연말 7518억원으로 예상되는 누적적립금이 내년엔 완전히 고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정 안정화 쉽지 않아

건보 재정수입은 △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 △국고지원금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들어오는 담배부담금 △기타 수입 등으로 이뤄진다.

내년에 예상되는 막대한 추가부담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이들 수입 기반의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는 연내에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예산편성 과정에서 국고지원 확대 등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우선 보험료 인상으로 재정 고갈을 막으려면 내년도 인상률이 올해보다 적어도 4%포인트 오른 11%는 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물가 억제 방침이 확고한 상황에서 이 정도의 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해와 올해 보험료 인상률이 6.5%,6.4%에 머물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담뱃값을 500원 올릴 경우에도 연간 4000억~5000억원의 건보재정 확대 효과가 있지만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정부로서는 이 카드를 뽑기도 여의치 않다.

이에 따라 정부는 건보재정 안정화 방안으로 차상위계층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다시 국고로 넘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건보재정의 경우 최소한 균형은 유지해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면서 "건보료나 담뱃값 대폭 인상이 여의치 않은 만큼 차상위계층 의료비를 다시 국고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시훈/오상헌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