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쇄신안 발표] '컨트롤타워' 전략기획실, 50년 만에 역사 속으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삼성이 발표한 4ㆍ22 쇄신안의 핵심 중 하나는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삼성의 컨트롤 타워'로 불릴 만큼 전략기획실의 비중이 컸다는 점에서 쇄신안은 충격 이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전략기획실의 역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이병철 회장은 그룹의 덩치가 커짐에 따라 계열사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회장 비서실'을 만들었다.
초창기 비서실은 삼성물산의 과 단위 조직에 불과했다.
인원도 20명 정도였다.
초대 실장은 당시 제일모직 총무과장이던 이서구씨가 맡았다.
이런 비서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1970년대부터.1970년부터 1990년까지 20년간 송세창씨와 소병해씨가 각각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비서실은 규모와 역할면에서 명실상부한 삼성의 최고 권부로 자리잡았다.
특히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소병해씨가 비서실장을 맡던 시기에 비서실 규모는 15개팀 250여명으로 확대됐다.
맡은 업무도 인사를 포함해 감사,기획,재무,국제금융,경영관리,홍보 등으로 늘었다.
이 시기 비서실은 삼성전관(현 삼성SDI) 삼성코닝 삼성항공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 그룹의 알짜배기 회사들을 설립 또는 인수하면서 삼성의 성장을 견인했다.
당시 회장 비서실은 1990년대 초 걸프전 발발 소식이나 김일성 사망 소식을 안기부보다 먼저 알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안팎에서 역량을 인정받았다.
비서실은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역할과 규모가 점차 축소됐다.
이 회장은 계열사별 자율경영을 중시하기 위해 1991년 비서실을 10개팀 130여명 규모로 줄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비서실은 다시 화려하게 부상한다.
초유의 경영 위기를 맞아 그룹의 통일된 경영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이 회장은 1998년 비서실을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로 개편했다.
첫 구조조정본부장은 현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 맡았다.
이 시기 구조본의 위상은 '재계의 청와대''삼성의 심장' 등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
이 회장의 경영도 구조본을 통해 꽃을 피웠다.
1998년 삼성자동차 등 일부 실패한 사례도 있었지만 구조본은 삼성전자 중심의 제조부문과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부문이란 그룹의 양대 사업 축을 확고히 다지는 성과를 올렸다.
이 같은 성과와는 별개로 구조본은 삼성을 비판하는 세력들의 1차 타깃이 됐다.
이재용 전무에 대한 경영승계 과정을 구조본이 주도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2005년 'X파일 사건'으로 구조본은 이듬해인 2006년 3월 전략기획실로 축소 개편됐다.
이전까지 1실 5팀,147명이던 조직과 인원은 전략지원팀,인력지원팀,기획홍보팀 등 3개팀 100여명으로 줄었다.
비록 몸집이 줄기는 했지만 전략기획실은 구조본이 해왔던 '컨트롤 타워'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그룹의 중추로서 자리잡았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계기로 전략기획실의 50년 역사는 결국 막을 내리게 됐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