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 마찬가지로 환율도 정부가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1차관이 한 목소리로 환율 문제를 들고 나왔다.

강 장관은 16일 "투기세력보다 더 나쁜 세력은 지식을 악용해 선량한 시장참가자를 오도하고 그걸 통해 돈을 버는 사기세력(강 장관은 이를 'S기세력'으로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최 차관도 이날 "투기세력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만 '무모세력(무모한 세력)'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대책 없이 한 방향으로 간다는 점에서 투기세력보다 더 나쁘다"고 포문을 열었다.

강 장관과 최 차관의 이 같은 발언은 외환파생상품을 파는 은행 등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어서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그동안 환투기를 통해 차익을 얻으려는 세력을 여러 차례 경고하긴 했어도 외환변동 위험과 관련된 각종 파생상품을 사고파는 금융회사들을 지목해 비난한 적은 없었다.

관련 은행들은 강 장관과 최 차관의 발언에 대해 외환시장의 생리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과도한 외환거래 유도"

강 장관은 "(은행이 외환시장을) 잘 모르는 중소기업한테 환율이 더 떨어질 거다.

앞으로 2~3년은 환율이 절상될 것이라며 환 헤징을 권유해 수수료를 받아먹는다"고 비판했다.

은행들이 수출대금을 받을 기업에 선물환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해 수수료를 챙겨왔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과 선물환 계약을 맺어 환위험을 떠안은 은행들은 환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계약 규모만큼 외화를 들여와 원화로 바꾼다.

때문에 단기외채가 급증했고 원화 환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빚어졌다는 게 재정부의 판단이다.

또 은행들이 환전한 원화 자금을 대출에 사용하는 탓에 시중유동성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재정부는 은행의 부적절한 영업이 결과적으로 부동산시장 불안과 물가상승을 야기시켰다고 보고 있다.

강 장관은 "외환시장에 잘못된 세력이 있는데 정부가 방치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으며 투기세력이 있으면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말해 외환파생거래 등을 규제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것임을 시사했다.

◆과도한 쏠림은 문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수출업체들의 외환위험 회피 비율은 67%로 매우 높았던 반면 수입업체는 15%에 불과했다.

이 같은 불균형으로 인해 865억달러의 선물환 초과공급이 발생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환율 하락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환위험을 피하기 위한 통화옵션 거래 등을 했다고 보면 된다"며 "2006년과 2007년에는 이 상품으로 평가이익을 남긴 기업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원ㆍ달러 환율이 지난달 1000원을 넘어서면서 오히려 평가손이 발생한 기업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 "시장시스템 무시하나"

이에 대해 은행들은 외환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기업들이 환위험을 제거하고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는 긍정적 측면을 정부가 무시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환위험을 없애는 용역을 제공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만한 사안이 아니다"며 "은행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수수료도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결정된다"고 반박했다.

은행들은 또 외환파생상품을 죄악시하는 듯한 고위 당국자의 발언은 금융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방침에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현승윤/조재희 기자 hyunsy@hankyung.com


[용어풀이]

◆통화옵션=기초자산이 특정 통화인 옵션. 옵션소유자는 특정통화를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통상 통화선물이나 선물환 같은 계약이행을 위한 의무가 따르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할 경우에만 권리를 행사하는 청구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일부 옵션 상품은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