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My life]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 … ‘걸어다니는 식물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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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일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한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로 책을 읽고 일상 생활에 별 지장없이 사용할 수 있다.
세계 주요 미술관에 어떤 그림들이 걸려있는지 훤하고,우리의 시를 비롯 프랑스어,영어로 된 시를 1000수가량 외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몇 년도 음반이 가장 수준 높은지에 대한 토론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56)이다.
서울 회현동 우리금융지주 본사 23층에 있는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박 회장은 자그마한 체구에 편안해 보이는 눈웃음이 인상적이었다.
로비에서 회장실까지 4명의 경호원을 거쳐오면서 생긴 긴장감을 단숨에 없앴다.
요즘은 어디에 가장 관심이 가냐는 질문을 하자 눈을 반짝였다.
"얼마 후면 종묘에 명자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요."
그 뒤 줄줄이 '나무예찬'이 이어졌다.
1월엔 보성 차나무 꽃의 수줍은 자태를 꼭 구경해야 한단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은행나무 씨가 많고,집에서 키우기는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비교적 수월하다고 알려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정확한 명칭은 '아카시 나무'란다.
여기까지 듣고 있자니 '걸어다니는 식물도감'이라는 그의 별명이 실감난다.
겨울에 앙상해진 나뭇가지의 자라난 자태,즉 수세(樹勢)만 봐도 나무 이름을 맞출 정도다.
이름 뿐 아니라 어느 과에 속하는지,꽃은 어떤 모양인지,어떤 병에 자주 걸리는지를 두루 꿴다.
그렇다면 그 많은 공부를 언제 했을까.
여가 시간에 했다고 보기엔 이력이 너무 화려하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재경부 차관이 될 때까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지난해 4월부터는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고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하고 숨가쁘게 앞을 보고 달려온 전형적인 엘리트다.
30여년 동안의 공직생활은 1년 중 설날과 추석 당일에만 쉴 수 있을 만큼 빡빡했다.
그 와중에 이런 취미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리는 시간을 잘 활용한 덕이라고 했다.
"재경부에선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은 그 때 바둑이나 장기를 뒀지만 전 외국어를 공부했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취미생활'이었다고 주장한다.
대학시절부터 오페라 아리아와 칸초네의 뜻을 직접 알고 싶어 이탈리아 수녀를 찾아갔고,보들레르의 시를 원어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프랑스어를 배웠다.
두보와 이백의 정신세계가 궁금해 중국어에 빠져들었다.
지금의 부인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박학다식과 관계가 있다.
부인 이름(최명수)의 마지막 자인 '수(銖)'를 '주'가 아니라 '수'로 제대로 읽은 사람은 박 회장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결정적으로 점수를 땄어요.
물론 지금은 속았다는 농담도 듣지만 말입니다."
2명의 자녀들도 어렸을 땐 '미술관''음악회'라는 말만 해도 이를 갈 정도로 지겨워했지만 이젠 아버지와 함께 그림 얘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부인도 웬만한 오페라의 줄거리와 노래를 줄줄 꿸 정도로 마니아가 됐다.
결국 그는 가족과 함께 인생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의 취미가 공직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줬냐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셈이다.
다만 다양한 분야에 관한 관심은 '소신과 융통성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의 '공무원관'도 특이했다.
"공무원은 결정권자가 아닙니다.
국민의 합법적인 대표인 국회와 대통령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이들이지요.
때문에 일이 벽에 부딪쳤을 땐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퇴직도 두렵지 않다.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만 있으면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관과 극장을 오가며 여생을 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내일 퇴직해도 지루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좋은 호텔에서 자거나 비싼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외국에 나갈 비행기 값은 벌어놔야 하지 않겠어요? 그럴려면 좀 더 일해야죠.허허허."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로 책을 읽고 일상 생활에 별 지장없이 사용할 수 있다.
세계 주요 미술관에 어떤 그림들이 걸려있는지 훤하고,우리의 시를 비롯 프랑스어,영어로 된 시를 1000수가량 외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몇 년도 음반이 가장 수준 높은지에 대한 토론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56)이다.
서울 회현동 우리금융지주 본사 23층에 있는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박 회장은 자그마한 체구에 편안해 보이는 눈웃음이 인상적이었다.
로비에서 회장실까지 4명의 경호원을 거쳐오면서 생긴 긴장감을 단숨에 없앴다.
요즘은 어디에 가장 관심이 가냐는 질문을 하자 눈을 반짝였다.
"얼마 후면 종묘에 명자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요."
그 뒤 줄줄이 '나무예찬'이 이어졌다.
1월엔 보성 차나무 꽃의 수줍은 자태를 꼭 구경해야 한단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은행나무 씨가 많고,집에서 키우기는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비교적 수월하다고 알려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정확한 명칭은 '아카시 나무'란다.
여기까지 듣고 있자니 '걸어다니는 식물도감'이라는 그의 별명이 실감난다.
겨울에 앙상해진 나뭇가지의 자라난 자태,즉 수세(樹勢)만 봐도 나무 이름을 맞출 정도다.
이름 뿐 아니라 어느 과에 속하는지,꽃은 어떤 모양인지,어떤 병에 자주 걸리는지를 두루 꿴다.
그렇다면 그 많은 공부를 언제 했을까.
여가 시간에 했다고 보기엔 이력이 너무 화려하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재경부 차관이 될 때까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지난해 4월부터는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고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하고 숨가쁘게 앞을 보고 달려온 전형적인 엘리트다.
30여년 동안의 공직생활은 1년 중 설날과 추석 당일에만 쉴 수 있을 만큼 빡빡했다.
그 와중에 이런 취미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리는 시간을 잘 활용한 덕이라고 했다.
"재경부에선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은 그 때 바둑이나 장기를 뒀지만 전 외국어를 공부했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취미생활'이었다고 주장한다.
대학시절부터 오페라 아리아와 칸초네의 뜻을 직접 알고 싶어 이탈리아 수녀를 찾아갔고,보들레르의 시를 원어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프랑스어를 배웠다.
두보와 이백의 정신세계가 궁금해 중국어에 빠져들었다.
지금의 부인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박학다식과 관계가 있다.
부인 이름(최명수)의 마지막 자인 '수(銖)'를 '주'가 아니라 '수'로 제대로 읽은 사람은 박 회장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결정적으로 점수를 땄어요.
물론 지금은 속았다는 농담도 듣지만 말입니다."
2명의 자녀들도 어렸을 땐 '미술관''음악회'라는 말만 해도 이를 갈 정도로 지겨워했지만 이젠 아버지와 함께 그림 얘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부인도 웬만한 오페라의 줄거리와 노래를 줄줄 꿸 정도로 마니아가 됐다.
결국 그는 가족과 함께 인생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의 취미가 공직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줬냐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셈이다.
다만 다양한 분야에 관한 관심은 '소신과 융통성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의 '공무원관'도 특이했다.
"공무원은 결정권자가 아닙니다.
국민의 합법적인 대표인 국회와 대통령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이들이지요.
때문에 일이 벽에 부딪쳤을 땐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퇴직도 두렵지 않다.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만 있으면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관과 극장을 오가며 여생을 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내일 퇴직해도 지루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좋은 호텔에서 자거나 비싼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외국에 나갈 비행기 값은 벌어놔야 하지 않겠어요? 그럴려면 좀 더 일해야죠.허허허."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