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7) 한진공예사 ‥ "전통벼루 1000여점 재현 8월께 전문박물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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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한진공예사 대표는 "남은 인생을 우리나라 전통 벼루를 재현하고 벼루 붐을 일으키는 데 보태고 싶다"며 "이를 위해 국내 최초의 벼루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요즘 자신의 공방(한국전통연(硯)개발연구원)에서 경복궁 경주 부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보관 중인 유서 깊은 전통 벼루를 실물과 같게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다.
한진공예사 옆에 건립 중인 벼루 박물관은 2층 건물로 1층은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서예나 벼루 제작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관으로,2층은 벼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꾸며진다.
오는 8월께 개관될 예정이다.
김 대표의 사재와 도비 및 시비 등 2억2000만원이 투자됐다.
벼루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각 지역의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전통 벼루를 실물 크기로 만들어 전시할 예정이다.
모두 1000여점에 이른다.
그는 "우선 창덕궁에 소장된 동천연(冬天硯) 등 300여점을 재현해 박물관을 개관하고 남은 생애에 나머지 700여점도 완벽히 만들어 전시하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대표가 벼루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은 벼루산업의 쇠퇴로 전통 벼루 제작 기법마저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만 해도 붓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이마저도 급격히 줄어 들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초등학교의 서예 수업은 아예 없어졌다.
일본에 가보니 유치원에서도 서예를 배우고 있던데…."
그는 "오래 전에 학생들이 문방구 등에서 사서 쓰는 벼루는 질 나쁜 돌인 중석이나 하석으로 만들어졌다"며 "이를 최상급의 돌인 백운상석으로 제작,저렴하게 공급하려고 공장 기계화 등 시설을 늘렸으나 서예 수업이 없어지면서 포기했다"고 전했다.
서예 인구가 감소하다보니 요즘 보령지역에서 생산되는 벼루는 하루 1t정도로 1980년대 10t에 비해 10%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당시 100여명을 넘었던 벼루 제조자들도 지금은 10여명으로 줄어 간신히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그는 전했다
김 대표는 1977년부터 30여년째 충남 홍성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벼루 제작 법을 가르치면서 전통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벼루 부문에서 민예품 공급업체로 지정됐었다.
또 2000년부터 7년간 정부조달문화상품협회장을 맡아 전통 공예품의 상품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김 대표는 요즘 자신의 공방(한국전통연(硯)개발연구원)에서 경복궁 경주 부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보관 중인 유서 깊은 전통 벼루를 실물과 같게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다.
한진공예사 옆에 건립 중인 벼루 박물관은 2층 건물로 1층은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서예나 벼루 제작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관으로,2층은 벼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꾸며진다.
오는 8월께 개관될 예정이다.
김 대표의 사재와 도비 및 시비 등 2억2000만원이 투자됐다.
벼루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각 지역의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전통 벼루를 실물 크기로 만들어 전시할 예정이다.
모두 1000여점에 이른다.
그는 "우선 창덕궁에 소장된 동천연(冬天硯) 등 300여점을 재현해 박물관을 개관하고 남은 생애에 나머지 700여점도 완벽히 만들어 전시하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대표가 벼루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은 벼루산업의 쇠퇴로 전통 벼루 제작 기법마저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만 해도 붓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이마저도 급격히 줄어 들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초등학교의 서예 수업은 아예 없어졌다.
일본에 가보니 유치원에서도 서예를 배우고 있던데…."
그는 "오래 전에 학생들이 문방구 등에서 사서 쓰는 벼루는 질 나쁜 돌인 중석이나 하석으로 만들어졌다"며 "이를 최상급의 돌인 백운상석으로 제작,저렴하게 공급하려고 공장 기계화 등 시설을 늘렸으나 서예 수업이 없어지면서 포기했다"고 전했다.
서예 인구가 감소하다보니 요즘 보령지역에서 생산되는 벼루는 하루 1t정도로 1980년대 10t에 비해 10%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당시 100여명을 넘었던 벼루 제조자들도 지금은 10여명으로 줄어 간신히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그는 전했다
김 대표는 1977년부터 30여년째 충남 홍성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벼루 제작 법을 가르치면서 전통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벼루 부문에서 민예품 공급업체로 지정됐었다.
또 2000년부터 7년간 정부조달문화상품협회장을 맡아 전통 공예품의 상품화에 앞장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