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 한국경제硏 선임연구위원 >

공기업의 방만한 행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빚더미에 있는 공기업이 허위문서를 만들어 건설업체에 대출을 해주고,직원 채용 시험점수를 조작하고,과도한 접대비를 흥청망청 써대고,각종 편법으로 직원들 수당을 올리는 등의 구태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도 이런 부조리와 문제점은 감사하고 뒤지면 어느 정도 찾아낼 수는 있다.

이런 방만한 행태가 공기업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더 큰 구조적 문제는 공기업이 국민경제의 자연스러운 전문화와 분업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민간에 맡길 것은 민간에게 맡겨야지 정부가 모든 것을 다 껴안고 가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기에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정부나 공기업이 직접 담당했다.

전력설비,다목적댐,수리시설,도로,철도,가스 저장탱크와 배관망,공항 등을 운영하는 공기업은 이의 건설까지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공기업이 SOC 건설의 종합관리를 맡으며 민간에게는 설계,시공,핵심설비의 제작,유지보수 등의 일을 나누어서 발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인프라의 건설수요가 선진국 수준으로 점차 포화돼 가고 있으나 공기업은 아직도 건설인력을 유지하면서 민간에 이를 양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SOC 건설에 대한 지휘권은 운영자인 공기업보다는 민간이 맡는 것이 전문성을 제대로 살리는 길이다.

공기업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민간기업의 역할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그동안 공기업이 자체적으로 종합건설관리를 맡아왔기 때문에 해외건설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유수한 민간 건설회사나 제작사들이 부가가치가 높은 턴키베이스로 일감을 따오기가 무척 어려웠다.

국내에서도 공기업이 자리를 내주지 않아 수주실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원전건설 시장을 노리고 미국은 GE와 웨스팅하우스,프랑스는 아레바,일본은 최근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한 도시바를 비롯해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 등의 원전 제작업자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작업자가 아닌 운영자로서 한전이나 그 자회사인 한수원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마치 항공사가 비행기를 팔러 다니는 것처럼 전문성에도 맞지 않는 어색한 분업구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는 전력ㆍ가스ㆍ철도ㆍ지역난방 등과 같은 네트워크 산업을 우리나라에서는 공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공기업이 경제개발기에 다양한 네트워크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나 이로 인해 민간의 역할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마치 농구에서 덩치 큰 센터가 골밑에 버티고 서 있어서 상대편에게 도무지 골밑 공격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처럼 우리 공기업은 민간의 시장을 선점하고 내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공기업은 세계시장에서 어깨를 겨루고 경쟁해야 하는 우리 국민경제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민간에게 맡길 것은 민간에게 맡기고 정부와 공기업은 공익과 관련된 최소한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수들이 골밑만 서성거리면 농구경기가 지루해진다.

농구에서도 공격 측 선수가 골에 가까운 제한구역에서 3초 이상 머물면 안 된다는 3초룰이란 것이 있다.

시장이 아닌 정부의 힘으로 공기업이 오랫동안 좋은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경쟁에 어긋난다.

이제는 공기업도 민간과 시장에 양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