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반도체 회사인 엘피다메모리가 4월 중 D램 가격을 20% 인상한다고 31일 전격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D램 가격 폭락에 따른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엘피다메모리는 PC업체 등 반도체 부품으로 완제품을 만드는 세트업체들과 사전 협상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가격인상을 통보했다.

최근 반도체 시황 악화로 가격 결정권이 세트업체에 넘어간 상황에서 '을(乙)' 입장에 있는 D램 제조업체가 '배짱'을 부린 셈이다.

업계는 D램 가격 급락을 더이상 버틸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보고 있다.
엘피다 '배짱' 승부수 통할까 … D램값 20% 인상 통보
◆엘피다,왜 가격 올리나

사카모토 유키오 엘피다메모리 사장은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4월 초에 D램 가격을 10% 인상한 뒤 4월 말에 가격을 10% 더 올린다는 계획을 최근 PC제조업체 등 고객사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반도체 업체도 지금처럼 낮은 가격 수준에서는 D램으로 수익을 낼 수 없다"며 "시장 가격이 다시 건전한 수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D램 가격 하락의 여파를 더이상 감내할 여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엘피다메모리는 작년 초부터 시작된 D램 가격 급락으로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2006년 말 5.95달러였던 D램 가격(512Mb DDR2 기준)은 작년 12월 1달러 밑으로 떨어진 뒤 현재 0.91달러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4분기 270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엘피다메모리는 지난해 4분기엔 882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마이크론,키몬다,난야테크놀로지 등 대부분 D램 업체들이 작년 2분기부터 막대한 적자를 기록 중이다.

작년 3분기까지 흑자를 냈던 하이닉스도 작년 4분기에는 3180억원의 적자를 봤다.

사정이 이렇지만 D램 업체들은 가격을 일방적으로 올릴 수 없는 상황이다.

2006년 4분기까지만 하더라도 D램 수요가 급증해 삼성전자,하이닉스 등이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초부터 D램 가격이 급락하면서 가격 결정 주도권이 PC 및 휴대폰 제조업체들에 넘어간 상태다.

업계에서 이번 엘피다메모리의 전격적인 가격인상을 '배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엘피다의 승부수 통할까

업계는 엘피다메모리의 가격 인상이 D램 값 반등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엘피다메모리에 이어 다른 D램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동참할 경우 D램 가격의 상승세가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D램 가격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트업체들과의 협상없이 가격을 일방적으로 올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엘피다메모리와 보조를 맞출 경우 미국 유럽 등으로부터 가격담합 혐의로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은 가격 인상에 동참하는 대신 세트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D램 가격을 소폭 인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도 엘피다메모리의 가격 인상 효과에 회의적이다.

D램익스체인지의 애널리스트인 로저 추는 "D램 가격의 하향 압력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어 당분간 중.하위권 D램 업체들은 계속해서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태명 기자/도쿄=차병석 특파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