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에는 와인이 대중화되면서 와인 액세서리도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사양하기 위한 무기로 와인 마니아인 양 코르크 스크루를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여성 직장인부터,취미로 수십만원대 '샤토 라기올' 와인 액세서리를 모으는 기업 경영자까지 그 수요와 용도가 가지각색이다.

와인 액세서리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와인 한 잔 마시는 데 필요한 도구가 이렇게 많나 싶다.

와인 병을 보관하기 위한 와인 랙과 셀러,와인을 서빙할 때 쓰는 와인 웨건,병 호일을 벗기는 호일 커터,코르크를 돌려 빼내는 코르크 스크루,코르크를 들어올리는 리트리버,마시기 직전 와인을 공기와 접촉시킬 때 쓰는 디캔터,와인을 따를 때 흘리지 않기 위한 흐름방지 링과 포러(pourer),화이트 와인을 얼음에 재울 때 필요한 와인 쿨러,마시다 남은 와인 병을 막는 진공 펌프,치즈 슬라이서와 나이프 세트 등등….

액세서리 브랜드도 다양하다.

백화점ㆍ와인숍ㆍ온라인 매장에 가면 '샤토 라기올''포르주 드 라기올''와인셉터''레스프리 & 르뱅''라뜰리에 뒤뱅' 등 웬만한 와인 액세서리 브랜드가 다 들어왔다.

와인 글라스도 오스트리아산 '리델'만 있는 게 아니라 '슈피겔라우''즈위젤''이탈레쎄''글라스&코' 등으로 선택폭이 넓어졌다.

지난해까지 두산이 만들던 파커 와인 글라스가 값싼 중국산과 고급 유럽ㆍ미국제 틈바구니에서 설 자리를 잃어 시장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이렇다 보니 고르기도 만만치 않다.

편의점에 가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중국산 코르크 스크루가 1500원인데,와인용품 쇼핑몰 엔비노(www.nvino.com)에선 손잡이가 금으로 된 '샤토 라기올' 제품이 35만원에 이른다.

와인 글라스도 중국산은 개당 1000원짜리도 있지만 '리델'의 소믈리에 시리즈는 한 개에 11만~13만원에 팔린다.

고가 제품은 비싼 이유가 있다는 게 브랜드들의 변(辯)이다.

리델 창업주의 11대 손인 막시밀리안 리델 사장은 최근 한국에서 시음행사를 주최하면서 "싼 와인 글라스는 마감이 불량이라 림(테두리)이 두꺼워 와인의 흐름을 방해하고 아로마보다 알코올의 느낌을 먼저 전하지만,리델의 글라스는 레이저 컷으로 완벽하게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리델 글라스는 와인의 부케(아로마)를 잘 모아서 콧속에 퍼뜨려 주고 입속에서 가장 적당한 위치에 와인이 떨어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얘기다.

리델 사장은 와인을 잔에 따른 후 가볍게 스월링(흔들기)을 한 후 잔 속에 코를 깊숙이 박고 "음~"하고 시연을 해보였다.

그는 "이 좋은 와인을 종이컵에 마시면 어떻겠냐"며 "일단 손이 가지도 않을 뿐더러 병원에 온 기분이 들 것"이라며 미간을 찡그렸다.

혀에는 네 가지 맛을 느끼는 위치가 각각 다르게 분포돼 있다.

때문에 와인 품종에 따라 입구 모양이 다른 잔을 골라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예를 들어 단맛은 혀끝으로 느끼는데,화이트 와인인 쇼비뇽 블랑은 신맛부터 느끼면 혀보다 위에서 먼저 반응을 해버리므로 입구가 좁고 길쭉한 글라스에 따라 마신다.

일각에선 이런 주장이 와인 액세서리 메이커들의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 와인업체 관계자는 "와인 글라스에 기포가 끼어 있다고 와인 맛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플라스틱 스크루를 쓰나 회양목 스크루를 쓰나 뚜껑이 열리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면 와인을 술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대접하는 사람들은 "10만원짜리 와인을 마시는데 플라스틱 스크루가 웬 말이냐"고 펄쩍 뛴다.

분명한 것은 국내 시장 트렌드는 고급ㆍ고가 위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윤종규 엔비노 과장은 "예전엔 중저가 오프너가 많이 팔렸는데 요즘은 핸드메이드 와인글라스와 코르크 스크루,디캔터 등 전문용품 매출이 많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