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의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미국 국채 투자 일변도에서 벗어나 투자자산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인하로 미 국채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데다 달러 또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채의 주요 매수주체인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자산 비중 축소에 적극 나설 경우 달러가치 하락을 더 부추길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 급락은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달러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도 손해여서 단기간 급격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국민연금 "미 국채 더 안 산다"

자산 규모로 세계 5위 연금인 국민연금은 27일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미 국채의 추가매입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곽대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해외투자실장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 국채 투자비율이 이미 너무 높은 수준인 데다 최근 수익률이 크게 떨어져 미 국채를 더 사는 것이 어렵다"며 "미 국채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한 매니저는 "아직은 미 국채 투자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향후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유럽 국채로 갈아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작년 6월만 해도 연 5%대였던 미 국채 2년물 수익률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잇따른 금리인하 등의 영향으로 이날 현재 연 1.6742%까지 떨어졌다. 현재 총 220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해외채권 직접투자 비중이 7%가량이며 이 가운데 90% 이상(140억달러)을 미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亞중앙은행 "역내 국채 투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16개국 중앙은행은 지난 주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그간 미 국채에만 집중돼온 외환보유액 투자를 역내 국채 투자 등으로 다변화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아만도 테탕코 필리핀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중앙은행 대부분이 아직 역내 국채에 투자하고 있진 않지만 고려 중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10년만기 달러화 표시 채권의 수익률은 연 6.06%인데 미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연 3%대에 불과하다.

1조65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중국은 작년부터 달러화 약세로 보유자산 가치가 떨어져 투자자산을 다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위안화 가치는 이날 달러당 7.0130위안을 기록 또다시 사상최고치(달러가치는 사상최저)를 경신했다. 조만간 6위안대 진입이 예상된다. 만약 위안화의 절상이 가속화돼 중국이 미 국채 매각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하지만 달러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아시아 각국에도 결코 이롭지 못해 외환보유액 투자자산 다변화는 점진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미 재무부에 따르면 미 국채 최대 투자국인 일본의 경우 지난 1월 말 미 국채 보유잔액(민간투자액 포함)은 5869억달러로 작년 말(5812억달러)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수익률은 하락했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짐으로써 이를 상쇄,미 국채 매수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스티븐 젠 모건스탠리 글로벌 외환전략가는 "러시아를 제외할 경우 대부분의 대형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달러화로 보유하고 있다"며 "이들은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투자자산 다변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