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시면 하몽이 당기고,하몽 먹으면 와인이 당긴다."

스페인 사람들이 흔히 하는 소리다.

한국인들이 얼큰한 찌개를 먹을 때 "여기 소주 한 병이요~"를 외치는 것처럼 와인과 하몽은 그만큼 궁합이 잘 맞는 것일까?

하몽은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염장해 석달 이상 자연 건조시켜 만드는 저장식품.스페인 사람들이 "하몽이 없었다면 신대륙 진출이 불가능 했을 테고 세계사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자랑할 만큼 역사가 있는 음식이다.

얇게 저며서 먹는데,짭짤한 맛과 쫄깃하게 씹히는 느낌이 드라이하고 텁텁한 와인 맛을 중화시켜 와인 한 병이 금세 동난다.

이 하몽이 지난 20일 와인 유통업체 와인나라가 서울 서초동 와인나라아카데미에서 개최한 스페인 와인시음회에 등장했다.

주한 스페인 대사관의 이그나시오 페르난데스 팔로메로 경제ㆍ상무 참사관은 "하몽은 짭짤하면서도 풍미가 깊고 스페인 와인은 포도 자체의 여운이 강한데 이 둘을 함께 즐기면 환상의 궁합"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와인이 한국에 먼저 소개돼 유명세를 탔을 뿐이지,유럽 포도 생산 1위인 스페인에도 결코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 와인 문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가 와인 수출을 빨리 시작했고 워낙 많이 수출하는 탓에 와인 하면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치즈부터 떠올리지만,사실 와인과 관련된 음식 문화는 유럽 미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걸쳐 저마다 개성 있게 진화했다.

제각기 다른 토양과 기후,바람이 다양한 식재료를 만들고 사람들의 입맛도 그에 따라 길들여지기 때문.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와인은 스파게티나 피자와 한 테이블에 오르고,독일에선 수제 소시지와 사우어크라우트(식초에 절인 양배추)에 와인이 따라온다.

토양에 따라 포도 품종과 맛에 차이가 나므로 국가별로 와인의 느낌도 조금씩 다르다.

전문가들은 와인을 마실 때는 산지를 살펴서 그 나라 고유 음식을 곁들여 보라고 조언한다.

이제훈 쉐라톤그랜드워커힐 소믈리에는 "뉴질랜드의 피노 그리 와인(화이트)에서 느껴지는 산뜻한 산도는 호주 석화 요리의 비릿함을 감싸 안아주는 장점이 있고 과일 향이 진한 루마니아산 페테아스카 네아그라는 스파이시한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현지 요리 사르말레와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이 소믈리에는 "포르투갈 와인은 대구나 넙치 같은 생선을 이용해 정감 있게 만드는 그 나라의 가정식 요리와,칠레산 카메르네르 로제 와인은 옥수수 토마토 호박을 으깨고 쪄서 만드는 칠레 음식과 궁합이 맞는다"고 덧붙였다.

요즘에는 국내 와인 수입상들이 전 세계에서 와인을 들여오고 국가별 테마를 담은 행사들을 부지런히 기획하고 있어 조금만 노력을 기울인다면 '글로벌 와인+음식 탐험'이 어렵지 않다.

특히 다음 달에는 와인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길 행사들이 많다.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테이블 34'에서는 다음 달 1일부터 6일까지 칠레 와인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칠레 산 페드로 와이너리와 수입 업체인 금양인터내셔널이 칠레에서 유명 요리사를 데려와 칠레 음식문화를 제대로 보여줄 예정이다.

서울 롯데호텔에선 다음 달 16일부터 18일까지 일본의 음식과 와인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열린다.

일본 긴자 '스시코'의 스기야마 마모루 조리장이 11가지 일식 코스요리와 5가지 와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은 유럽에서 와인문화를 들여왔지만 스시를 먹을 때 10명 중 3명은 와인을 마실 정도로 자기 나름의 특색 있는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하몽은 2003년부터 국내에도 수입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100g 단위(2만2000원)로 판다.

올 1,2월까지 와인 수입 통계를 보면 바야흐로 와인 춘추전국 시대다.

이 기간에 수입된 와인 3200만달러어치(무역협회 통계) 가운데 절반은 여전히 프랑스 와인이지만 칠레와 이탈리아 와인은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호주와 스페인 와인이 선전하고 있고 독일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와인도 쉽게 맛볼 수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