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에서 자동차 부품업을 운영하는 김덕모 사장(56ㆍ가명)은 요즘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1년 전 공장 운영 자금으로 1억엔을 대출받았는데 요즘 원ㆍ엔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화로 환산한 상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원ㆍ엔 환율은 17일에는 장중 100엔당 1074원대까지 치솟았다.

김 사장은 "연초만 해도 820원대에 머물던 원ㆍ엔 환율이 석 달도 안돼 230원(28%) 넘게 올랐으니 타격은 말할 것도 없다"며 "환율 변동에 따른 상환 부담이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으로 김 사장이 갚아야 할 원화 환산 상환 부담금은 8억2800만원에서 약 2억3300만원 더 늘어나 1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서둘러 원화 대출로 바꿔 타지 못한 게 문제였다.

원화 약세(원화 환율 상승)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외화 대출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과거에는 원화가 강세인 데다 특히 엔화의 경우 국내 대출보다 금리가 낮아 외화대출이 유리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뒤바뀌었다.

환율이 계속 오르면서 가만히 있어도 원화로 환산한 대출 원금이 불어나고 있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외화대출 잔액은 지난 14일 현재 엔화 대출이 5340억엔,달러화 대출이 123억달러 정도다.

작년 10월(엔화대출 6077억엔,달러대출 124억6700만달러)보다 엔화 대출이 줄긴 했지만 엔화 대출을 이용한 자영업자들은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환율 급등에 초조해하고 있다.

원ㆍ엔 환율이 뛴다고 해서 원화 대출로 선뜻 갈아타기도 쉽지 않다.

가령 1억엔을 연 3%로 대출받았다면 연 300만엔의 이자만 내면 됐지만 국내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연 6~7%의 고금리를 물어야하기 때문이다.

원ㆍ엔 환율 상승으로 만기 상환 부담이 불어나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만기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사업 부진으로 자금난을 겪는 상황에서 외화자금 만기가 돌아온 경우 비상이 걸렸다.

저금리의 엔화 자금을 대출받아 부동산 투자 용도로 썼던 개인들이 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자금 회전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환율 급등으로 환차손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외화대출 규제로 만기가 돌아온 외화대출은 일단 갚아야 한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해외 사용 실수요 목적과 국내 시설자금용 외화대출 외에는 외화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제한을 가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투자를 위해 대출받은 사람들은 만기가 돌아오면 원화를 빌려 일시에 외화대출을 갚아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로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면서 제때 외화대출을 상환하지 못하고 연체금리를 부담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낮은 엔화 금리에다 원금 상환 때 환율 하락에 따른 혜택을 기대하고 대출받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엔화 대출을 이용한 고객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