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출신 현각스님, 방한 컬럼비아대 MBA 생들에 설법

"아이디어를 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생각하는 순간 진실은 사라집니다."

14일 서울 방배동 불교방송 건물 9층 법당.미국 하버드대 출신 '벽안의 스님'인 현각이 방한 중인 미 컬럼비아대 경영전문대학원(MBA스쿨) 학생 30여명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중단하라"며 이같이 말했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MBA 교과과정과는 정반대의 주문.순간 학생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현각 스님은 '생각의 위험성'에 대해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네 명의 장님이 코끼리의 각기 다른 부분을 만지고 모두 자기 생각이 맞다며 논쟁을 벌입니다.

어떤 이는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지고 '코끼리는 벽'이라고 주장하고,또 다른 이는 코를 만지고 '코끼리는 파이프'라고 우기며 싸웁니다."그는 "인간의 생각이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진실은 생각하면 할수록 왜곡된다는 게 이날 현각 스님이 내린 법어(法語)다.

그는 "하늘은 스스로 '파랗다'고 한 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푸르다'고 할 뿐"이라며 "우리가 믿는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교수의 강의조차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하지 말고,있는 그대로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설명을 돕기 위해 그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뭡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학생 한 명이 스님과 똑같이 손으로 방바닥을 내리쳤다.

그러자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생각하지 말고,해석하지 마십시오.진실은 있는 그대로의 것입니다"고 말한 현각 스님은 "오늘 이 자리에서 '참선'을 이해하는 후계자를 만났다"며 웃었다.

학생들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현각 스님은 "진실은 생각이나 공부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고도 했다.

진실은 굉장히 단순하며 순간 순간 그냥 흘러가는 것이란 설명이다.

스님은 끝으로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라고 충고했다.

이는 현각 스님의 개인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기도 하다.

하버드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던 그는 한국에서 온 숭산 스님의 '너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출가했다.

현각 스님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불교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타이틀이 중요하지 않다면서 현각 스님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뭐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미국 뉴욕 출신인 일란 소퍼는 '당신은 누구냐'는 기발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각국으로 스터디 투어를 다녔지만 이번 같은 정신적 체험은 처음"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국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인 유학생 허승씨는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며 "무상무념이란 새로운 관점에서 비즈니스 세계를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서울을 찾은 컬럼비아대 MBA스쿨 학생들은 11일 서울대에서 송재용 교수의 '삼성전자 성공 비결' 강의를 들었으며 15일엔 개성 공단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들은 16일 출국한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