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부처 업무보고 첫날 공직자들의 기강을 다잡는 것으로 시작했다.

10일 이뤄진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15분 내내 '공직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며 '정신무장'을 촉구하는 발언들을 작심하고 쏟아냈다.

이른바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무원 사회에 뼈를 깎는 수준의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청와대는 해석하고 있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나,아닐 때나 같은 자세'

이 대통령은 "지금은 모든 여건이 여의치 않다"고 진단하고,공직자로서의 새로운 결심을 주문했다.

특히 과거 기업체 근무 당시와 비교해 가며 공무원들의 '안일함'을 조목조목 따졌다.

이 대통령은 "내가 기업에 있을 때,국제 여건이 나빠지고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면 회사 간부들은 잠을 못 잤다"고 회상했다.

이어 "서민이 어렵고,재래시장 상인들이 장사가 안 돼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우리 공직자들은 어떤 심정으로 일하나"라고 반문한 뒤 "재정에 위기가 오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고,이렇게 된들 여러분은 감원이 되나 봉급 안 나올 염려가 있나,출퇴근만 하면 된다"고 비판했다.

또 "신분이 보장돼 있다는 걸로 위기나 위기가 아닐 때나 같은 자세"라며 "(회사가) 부도 나면 어쩌나,종업원 월급을 어떻게 줘야 하나,이런 심정으로 일을 해야 한다.

국민이 아파하는 것에 대해 더 아파하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 배경에 대해 "표현이 심할지 모르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공직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실용ㆍ현장ㆍ창의 등을 강조하며 누누이 변화를 주문했는데도 기대만큼 부응해오지 않는 데 따른 불만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과거의 관습과 낡은 생각,그런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국민이 매우 걱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데서 이 같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머슴론' 제기

이 대통령은 새 정부 들어 유행한 '얼리 버드(early birdㆍ일찍 일어나는 새)' 근무 시스템에 대한 일각의 불만에 '쐐기'를 박았다.

이 대통령은 "회의를 오전 7시30분에 한다고 해서 앞으로 5년간 늘 그런 것 아닌가 하지만,공직자는 서번트(servant),쉽게 말하면 머슴"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머슴 역할을 했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주인인 국민보다 앞서 일어나는 게 머슴의 할 일이다.

머슴이 주인보다 늦게 일어나선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활발한 토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업무보고 뒤 실무 국장까지 참여한 분야별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회의 시간은 예정보다 1시간 이상 길어졌다.

강 장관은 "과거에도 규제 완화를 한다고 많이 이야기했는데 기업들이 아직도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공직자들의 자세만 달라져도 규제의 50%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국환 2차관과 최종구 국제금융국장 등이 감세와 여행수지 적자 문제 등을 거론하자 이 대통령은 "웬만한 문제는 다 제기되어 있고 개선 방향도 있는데 나아지지 않고 왜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식으로 가면 아마 몇 년 뒤에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안이나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구체적인 실천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