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LCD 패널 세계 시장 점유율 44%,세계 TV 시장 점유율 50%….

지난해 국내 전자업체들이 올린 성적표다.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반도체,LCD,TV,가전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해외 업체들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결과다.하지만 "국내 전자업계의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린다.최근 들어 해외 업체들의 대반격이 시작된 가운데 국내 경영 여건은 악화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일본과 대만 전자업체들의 날선 공세다.10여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았던 반도체 사업에선 일본 도시바가 '타도 삼성전자'를 공언하고 나섰다.도시바는 내년까지 1조8000억엔을 들여 낸드플래시 공장 두 곳을 신설,'부동의 낸드플래시 업계 1위'인 삼성전자를 추월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국내 업체의 텃밭으로 여겨온 LCD 패널 사업도 잇단 외부 악재에 직면하고 있다.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는 지난해 글로벌 연간 매출 기준으로 각각 23%,21%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나란히 1,2위에 올랐다.하지만 지난해 4분기만 놓고 보면 대만의 AUO가 1위에 올랐다.분기 기준으로 국내 업체가 1위를 내준 것은 처음이다.여기에 PDP 패널 세계 1위인 일본 파나소닉(옛 마쓰시타)은 2010년까지 3000억엔을 들여 8세대 LCD 패널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주도하는 LCD 패널 부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가전사업도 위기를 맞기는 마찬가지.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여파로 국내 가전 및 TV 매출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북미시장에서 판매량이 급감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해외발(發) '쓰나미'에 직면한 국내 전자업계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내우(內憂)'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국내 전자업계의 '맏형'격인 삼성전자가 비자금 특검수사의 여파로 흔들리면서 일본과 대만 업체들에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중순에 세웠어야 할 올해 사업계획을 아직도 확정하지 못한 채 투자 시기를 놓치고 있다.여기에다 주요 총괄사장들이 특검에 줄소환되면서 내부 경영은 사실상 마비됐다.삼성그룹 관계자는 "지금 삼성전자의 위기는 도시바나 파나소닉에 큰 호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내부에서도 일본 업체들의 움직임에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2위의 모토로라가 하루아침에 휴대폰 사업을 포기하는 게 글로벌 전자업계의 현실"이라며 "지금 같아선 국내 전자업계가 1990년대 초반처럼 일본에 밀려 2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