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감기'로 알았는데… 세계경제 '전염병'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다.진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진 지 1년이 됐지만 아직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오히려 서브프라임 사태는 세계 경제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에 불과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유독가스 냄새를 가장 먼저 맡고 탄광 붕괴 위험을 알리는 카나리아처럼 서브프라임보다 더 무서운 '리세션'(recessionㆎ경기침체)을 예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서브프라임 사태의 시작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지난해 2월8일 세계적인 은행인 HSBC는 "전년도 미국 집값 하락 여파로 모기지 사업 관련 손실 규모가 105억6000만달러에 달한다"고 고백했다.하지만 2006년 4분기 집값이 2.7% 떨어지고 4분기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14%대로 오른 데 따른 감기 증상 정도로 여겨졌다.이어 지난해 3월에는 뉴센추리 파이낸셜 등 서브프라임 모기지 전문업체들이 줄줄이 항복했다.이때도 충격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는 듯했다.그러나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2차 파문은 '태풍급'이었다.6월 베어스턴스가 운용 중인 2개 헤지펀드를 청산한 것이 시발점이었다.8월엔 BNP파리바가 운용 중인 펀드 환매를 중단하면서 위기가 고조됐다.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대형 금융회사들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관련 손실 규모 발표가 잇따르면서 '쓰나미급'으로 번졌다.씨티그룹과 메릴린치가 사상 최악의 4분기 실적을 내놓았다.금리는 뛰어오르고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고용 감소의 충격

서브프라임 사태는 더이상 금융 부문의 문제로만 머물지 않고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양상이다.서브프라임 바이러스가 전반적인 경제에 깊숙이 퍼졌다는 지표가 잇따르면서 미국 경기침체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미 노동부는 1월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가 한 달 전보다 1만7000명 줄었다고 발표했다.취업자 감소는 2003년 8월 이후 3년5개월 만에 처음이다.당초 7만명의 일자리가 증가했을 것이라고 전망했던 월가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2002년 이래 가장 낮은 0.6%를 기록했다.최대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이 끼어 있는 4분기 성장률이 이 정도라면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골드만삭스는 최근 미국 경제가 1분기에 제로 성장을 한 뒤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마이너스 1%대로 뒷걸음질 칠 것으로 전망했다.

◆폭발력 큰 뇌관들


서브프라임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서브프라임 사태가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와 신용카드 자동차할부금융(오토론) 학자금대출(스튜던트론) 등의 부실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대형 채권보증사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서브프라임 사태는 새로운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18일 미국 2위 채권보증사인 암박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미 최대 채권보증사인 MBIA도 등급 하향 조정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

대형 채권보증사의 등급이 하향 조정되면 이들이 보증을 선 채권의 등급도 같이 떨어지기 때문에 채권값 하락(금리 인상)으로 인한 미국 지방정부와 대형 연기금 등 채권 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해진다.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7대 채권 보증사가 보증을 선 채권 규모는 2조4000억달러에 달한다.이들 채권 보증사의 등급이 하향 조정될 경우 투자자와 채권 발행자들의 손실은 약 2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8개 대형 은행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모노라인 구출 작전에 나섰다.에릭 디날로 뉴욕주 보험국장은 씨티그룹과 UBS 등 8개 은행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조직,채권보증사의 신용등급 강등을 막기 위해 100억~15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용카드와 오토론,스튜던트론 등 소비자대출 부문의 부실도 '메가톤급 뇌관'이다.미국의 소비자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에 3.14%로 전 분기보다 0.15%포인트 올랐다.2004년 3분기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미국 소비자대출 시장 규모는 2조5000억달러(약 2375조원)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시장의 2배에 달한다.더욱이 소비자대출의 경우 모기지대출과 달리 채권 보전 장치가 약해 부실이 은행 등 금융회사 손실로 고스란히 전가되고 실물경제를 급랭시킬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리세션의 공포

세계 경제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기침체 여파가 유럽과 일본은 물론 중국 등 이머징마켓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도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영국의 12월 소매판매는 1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으며 금융권의 주택대출도 2년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일본 경제는 이미 불황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골드만삭스의 야마가와 데쓰후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2002년 초부터 70개월간 지속된 일본의 경제성장이 종말을 고하고 침체기에 접어든 것 같다"고 평가했다.미국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중국의 성장 모멘텀까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중국의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에 이르고 그 중 대미 수출이 22%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있다는 정황들이 나타나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 그리고 이머징마켓의 경기까지 둔화되고 있다"며 올해 세계 경제성장 전망을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4.1%로 조정했다.

전미경제학회(NBER)에 따르면 1854년 이래 총 32차례의 경기침체가 발생했고 평균 17개월 지속됐다.가장 최근인 2001년 9ㆍ11사태로 발생한 경기침체는 8개월간 계속됐고 GDP는 0.4% 감소했다.1차 걸프전으로 발생한 1990~1991년 경기침체기에 미국 GDP는 1.3% 감소했지만 침체 기간은 8개월로 짧았다.하지만 이번 경기침체는 지난 두 번의 불황보다 길고 강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고유가와 곡물가 급등이 겹치며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나는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실제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지역)의 1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3.2% 상승,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우려감을 높이고 있다.월가의 거물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세계경제가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