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할 수 없는 증거 'DNA' ‥ 만약 범인이 역이용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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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의 진실'(정연보 지음,김영사)은 외화에서나 보던 유전자 감식의 세계를 폭넓게 그린 책이다.
번역서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들도 종종 등장한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단서를 거의 남기지 않은 강력범죄,예컨대 강간 사건의 경우 예전에는 정액 등을 채취하더라도 혈액형 정도밖에 못 알아냈지만 유전자 감식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침구에 약간 묻은 정도만으로도,심지어 컵에 묻은 침만으로도 범인의 DNA를 알아낼 수 있다.
버린 담배꽁초라도 주우면 엄청난 수확이다.
이런 증거물들을 재료로 DNA 프로필을 작성하게 되면 몽타주나 목격자의 증언보다 분명하고 강력한 경우가 많다.
이미 DNA 프로필이 기록돼 있는 자의 재범이라면 수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핵 안의 DNA가 많이 훼손되었다면 미토콘드리아에 존재하는 짧은 DNA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난자에서만 오기 때문에 모계쪽의 혈통을 알아내는 데에도 유용하다.
저자는 유전자 감식이 친자 확인,12명의 사형수를 비롯한 장기수 174명의 무고함을 밝혀낸 '결백 프로젝트',고대 인류의 이동경로 등의 문제에서 얼마만한 위력을 발휘했는지 생생하게 설명해준다.
미국 등 서구에서 한때 유행했던 조상 찾기 열풍도 이와 같은 유전자 분석에 힘입은 것이다.
물론 유전자 감식은 만능열쇠가 아니며,이 방식을 역이용한 범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유전자 데이터 뱅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권 침해를 비롯하여 '빅브라더'의 위험 또한 만만치 않다.
개인의 사적인 정보가 은행이나 기업체에 버젓이 유출되는 우리 사회에서 기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저자는 그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되 위험성을 과장하기보다는 엄격히 통제하고 활용함으로써 유전자 감식의 풍성한 열매를 한껏 누리자고 설득한다.
이제 우리도 추상적인 찬반논란을 넘어서 좀더 구체적인 논의를 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에 걸맞게 이 책은 원론적인 내용과 흥미로운 사례들은 물론 비판적인 견해까지 다루고 있다.
모든 독서가 다 그렇듯 이 책을 읽으면서 전혀 아쉬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저자는 유전자 감식 기법이 가진 여러 가지 유용성을 내걸고 있지만,실제 기업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는 동기는 더 많은 이윤 추구에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전공학을 활용한 초국적 생명공학 기업들은 환자보다는 돈벌이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각국 정부는 이에 대체로 너그러운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 감식 기술로 어떤 식품이 유전자변형식품인지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병을 만든 뒤 약 짓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런 현실적 문제를 인정한 후에야 인권이나 과학기술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진솔한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제 첫삽을 뜬 셈인 만큼,저자의 후속작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해 좀더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해본다.
325쪽,1만3500원.
< 박성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
번역서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들도 종종 등장한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단서를 거의 남기지 않은 강력범죄,예컨대 강간 사건의 경우 예전에는 정액 등을 채취하더라도 혈액형 정도밖에 못 알아냈지만 유전자 감식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침구에 약간 묻은 정도만으로도,심지어 컵에 묻은 침만으로도 범인의 DNA를 알아낼 수 있다.
버린 담배꽁초라도 주우면 엄청난 수확이다.
이런 증거물들을 재료로 DNA 프로필을 작성하게 되면 몽타주나 목격자의 증언보다 분명하고 강력한 경우가 많다.
이미 DNA 프로필이 기록돼 있는 자의 재범이라면 수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핵 안의 DNA가 많이 훼손되었다면 미토콘드리아에 존재하는 짧은 DNA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난자에서만 오기 때문에 모계쪽의 혈통을 알아내는 데에도 유용하다.
저자는 유전자 감식이 친자 확인,12명의 사형수를 비롯한 장기수 174명의 무고함을 밝혀낸 '결백 프로젝트',고대 인류의 이동경로 등의 문제에서 얼마만한 위력을 발휘했는지 생생하게 설명해준다.
미국 등 서구에서 한때 유행했던 조상 찾기 열풍도 이와 같은 유전자 분석에 힘입은 것이다.
물론 유전자 감식은 만능열쇠가 아니며,이 방식을 역이용한 범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유전자 데이터 뱅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권 침해를 비롯하여 '빅브라더'의 위험 또한 만만치 않다.
개인의 사적인 정보가 은행이나 기업체에 버젓이 유출되는 우리 사회에서 기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저자는 그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되 위험성을 과장하기보다는 엄격히 통제하고 활용함으로써 유전자 감식의 풍성한 열매를 한껏 누리자고 설득한다.
이제 우리도 추상적인 찬반논란을 넘어서 좀더 구체적인 논의를 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에 걸맞게 이 책은 원론적인 내용과 흥미로운 사례들은 물론 비판적인 견해까지 다루고 있다.
모든 독서가 다 그렇듯 이 책을 읽으면서 전혀 아쉬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저자는 유전자 감식 기법이 가진 여러 가지 유용성을 내걸고 있지만,실제 기업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는 동기는 더 많은 이윤 추구에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전공학을 활용한 초국적 생명공학 기업들은 환자보다는 돈벌이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각국 정부는 이에 대체로 너그러운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 감식 기술로 어떤 식품이 유전자변형식품인지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병을 만든 뒤 약 짓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런 현실적 문제를 인정한 후에야 인권이나 과학기술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진솔한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제 첫삽을 뜬 셈인 만큼,저자의 후속작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해 좀더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해본다.
325쪽,1만3500원.
< 박성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