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28일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직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해 '수용 불가(不可)'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현재의 원안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국회에서 의결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초강력 대응 방침도 강조했다.대통령직 인수위는 즉각 이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밝히며 반박해 임기 말까지 신·구 정권 간의 정면 충돌 양상은 지속될 전망이다.

◆인수위가 현 정부의 권리 침해

노 대통령이 이날 밝힌 기자회견문의 요지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정부 조직 개편법안에 대해 서명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떠나는 대통령이라고 해서 소신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 일이 당연하냐'는 항변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정보통신부와 여성가족부 통일부의 폐지,과학부와 교육부·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의 통합,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축소 등에 대해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들 부처의 생존 여부에 따라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타협안'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조직 개편 과정에 대해 분명한 문제점을 지적했다.특히 "45개 법안을 고치는,정부의 조직과 기능을 전면적으로 바꾸는,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폭적이고 전면적인 것"이라고 전제한 뒤 "참여정부가 수년에 걸쳐 공들여 다듬은 정부조직을 인수위 출범 20일 만에 개편안을 확정하고,이를 불과 1∼2주 만에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게 타당하냐"고 지적했다.노 대통령은 인수위의 이 같은 업무 추진 방식에 대해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월권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수위"포퓰리즘적 행태"

인수위는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떠나는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을 왜 이토록 완강히 가로막으려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노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구구절절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인수위가 졸속으로 개편안을 마련한 것처럼 주장한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특히 "마지막까지 소모적 부처 이기주의를 부추기고,소수의 집단 이기주의와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포퓰리즘적 행태에 끝까지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이어 "(노 대통령은) 아직도 임기가 남은 현직 대통령인 이상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 책무가 남아있다"면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아름답게 퇴장하는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받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이 밝혔다.

이심기/김인식/강동균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