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2008 봄.여름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서는 한국의 중견 디자이너가 세계 패션계로부터 '매우 새롭다(very new)'며 극찬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남성복 '준지(juun.j)'를 소개한 디자이너 정욱준씨(43).기존 남성복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실루엣을 제시해 '신선한 디자인'으로 단숨에 바이어들의 관심을 모았다.

보통 다섯 번 정도 파리 컬렉션 무대에 서야 바이어들이 상품으로서 옷을 봐 주지만 정씨의 옷은 바로 판매로까지 이어져 현재 파리와 홍콩 매장에 진열돼 있다.

특히 마틴 마젤라,발렌시아가 등 가장 '핫(hot)'하다는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들만 모여 있는 편집 매장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다.

파리에서는 신인 디자이너이지만 정씨가 남성복 디자이너로 한우물을 파 온 세월은 올해로 17년째.1992년 패션 사관학교인 '에스모드 서울'을 졸업하자마자 8년간 남성복 브랜드 '쉬퐁' 등 여러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아 1999년 서울 신사동 가로수 길의 16.5㎡(5평)짜리 매장에서 그의 브랜드 '론커스텀(LONE COSTUME)'을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 압구정동의 갤러리아백화점 맨지디에스 편집 매장과 가로수길 매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고 2005년부터 홈쇼핑 브랜드 '론 정욱준'을 시판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 매장을 늘려 가며 브랜드를 키워 갈 수도 있겠지만 그가 파리행을 결심했던 이유는 국내 유통 환경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는 "디자이너가 직접 매장을 운영해야 하는 국내 유통 환경에서는 어려움이 따른다"며 "차라리 파리 컬렉션을 통해 해외 시장의 바이어들에게 옷을 파는 게 더 낫다"고 설명했다.

파리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맨땅에 헤딩하듯' 직접 컬렉션 담당 에이전시를 찾아간 정씨의 열정이 조금씩 가시적인 성과를 안겨 주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리복 본사와 디자이너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것.아디다스와 요지 야마모토,푸마와 알렉산더 매퀸 등의 디자인 프로젝트처럼 세계 유명 디자이너 한 명을 선정해 디자이너 라인을 만드는 글로벌 브랜드의 프로젝트에 정씨가 당당히 꼽혔다.

또 3명의 디자이너와 함께하는 이탈리아의 글로벌 진 브랜드 '멜팅팟' 프로젝트에도 정씨가 발탁돼 올 3월 전 세계에서 그가 디자인한 제품이 판매된다.

그는 "여성복도 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많지만 스스로 입고 느껴 볼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혼이 담긴 옷들을 만들어 내기 힘들다"며 "남성복 하나라도 완벽하게 키워 내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19일 올 가을.겨울을 겨냥한 의상들로 다시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무대에 도전한다.

그는 "이번에는 첫 컬렉션 때보다 10배 이상 높은 인지도와 수주를 이끌어 낼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