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전경련회관을 찾아온 대통령 당선자를 맞는 대기업 회장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이명박 당선자도 차기 대통령이 아닌 동료 최고경영자(CEO)처럼 간담회에 참석한 20명의 회장들과 정겹게 어울리며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

한 대기업 수행 임원은 "정말 오랜만에 회장님께서 기분 좋아하시며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싹 가셨다'고 하셨다"는 말을 전했다.

지난 수년간 얼어붙었던 대기업 회장들의 마음이 풀렸다니 참 다행이다.

좌파 정부 아래서 교도(敎導) 대상으로 지목돼 수시로 여론의 체벌을 받아야 했고,그때마다 사회를 향해 머리숙이며 자아비판성 반성문을 써야 했던 회장들이었기에 이날의 소회는 남달랐을 게다.

아마 심리적 영어(囹圄)생활을 끝내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이날의 모임은 당선자가 재계를 향해 먼저 러브콜을 보내는 의미를 가지지만,기자가 보기에는 대기업 회장들이 당선자로부터 무거운 숙제를 받는 자리였다.

당선자가 이날 화두로 던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들의 투자 확대'는 온전히 기업의 몫이다.

더욱이 당선자의 상징 공약인 '747'(매년 7% 성장,10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7대 경제강국 진입)은 기업의 성장 없이는 달성 불가능한 숫자들이다.

당선자도 기업의 협조 없이는 '747' 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전경련부터 찾았다.

그리고 당선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 뒤 "정부와 기업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다"고 선언했다.

이 말은 "이제 정부와 기업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계는 "7% 성장은 가능하다""일자리 창출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한 배를 타는' 데 묵시적으로 동의한 셈이다.

재계는 이날 만남으로 이명박정부와는 호흡이 잘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재계가 받아든 숙제는 풀어나가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전체 매출의 70~80%를 해외에서 일으키는 삼성 현대차 LG그룹으로서는 정부의 기대치만큼 국내에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다.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주요 대기업들에 해외 생산기지 확충 및 해외 인력 고용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게다가 기업들의 '탈(脫)한국'을 재촉하는 고임금 등 국내의 고비용 구조는 단기간 내 해소가 어려운 부분이다.

"지나친 고비용 구조 속에서 과연 국내에 투자할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다"는 게 대부분 CEO들의 솔직한 생각이다.

노사관계 역시 만만치 않은 대목이다.

재고가 쌓이는 데도 노조의 압력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실시하고 있는 특근과 잔업 관행을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쉽게 없앨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행 노사관행을 바로잡으려다가는 자칫 일자리 창출과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

당선자의 친기업적 행보로 분위기는 좋아졌지만 성과를 내기까지는 난제가 많다는 얘기다.

28일 회동으로 재계는 이제 차기 정부와 함께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심하게는 공동책임의 구도에 들어갔다고도 할 수 있다.

당선자로부터 마음의 선물과 함께 숙제도 받아든 회장님들의 어깨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김상철 산업부장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