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청약날짜 못잡아 '비상'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옆 세우빌딩에 위치한 국민은행 청약실.이곳은 요즘 건설업체들이 이달에 분양하기 위해 들고 오는 아파트 청약 일정을 잡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려는 분양물량이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청약 전산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건설업체들이 원하는 대로 청약일정을 맞춰주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전국의 청약통장 70% 이상을 확보하고 있지만,전산처리 담당자가 1명밖에 없어 하루에 3~4개 분양사업 업무를 처리하기도 버거운 상태다.

이 바람에 청약 전산시스템을 통해 당첨자를 가린 뒤 발표하게 돼있는 청약일정을 이달 안에 업체별로 중복되지 않게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돼버렸다.

청약실 관계자는 5일 "이달에 거의 1년치 업무를 처리해야 할 상황이어서 매일 자정을 넘겨 야근하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건설업체 분양 담당자들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

당첨자 발표일을 하루라도 빨리 부킹하는 것이 청약 성적을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통상 청약접수 이후 발표일이 길어질수록 수요자들의 주택구매 열기가 식기 때문에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까지 애를 먹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분양가상한제를 피하려는 건설업체들의 행보로 연말 주택시장에서는 진풍경이 속출하고 있다.

아파트 청약날짜 못잡아 '비상'
같은 지역에서 아파트분양 '맞대결'을 벌일 경쟁업체들이 모델하우스 부지를 구하지 못해 주차장을 함께 사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달 중순 분양에 나서는 '일산 덕이지구 하이파크시티'와 '일산 식사지구 위시티'는 일산 백석역 인근의 같은 지역에서 모델하우스를 동시에 선보인다.

이들 모델하우스는 부지 가운데에 있는 주차장을 함께 사용하며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들어설 예정이다.

덕이지구 분양업체 관계자는 "일산에서 적당한 모델하우스 부지가 백석동과 장항동 일대밖에 없어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같이 모델하우스를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2~3년간 분양이 없던 김포 일대도 이달에 4~5개 단지의 분양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모델하우스 부지가 동난 상태다.

이에 따라 월드건설이 김포 고촌에서 분양 중인 '고촌 메르디앙' 모델하우스는 강서구 등촌동으로 나와 88체육관 맞은 편에서 문을 열었다.

분양대행업체인 미래인의 김흥복 부사장은 "부지를 구하지 못해 등촌동에서 모델하우스를 오픈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모델하우스용 아파트 모형 제작업체들은 때 아닌 특수로 연말이 즐겁다.

아파트 미니어처 제작부문에서 업계 1위인 다인은 평소 한달에 5~6건 정도 수주했지만 이번 달에는 12개나 따냈다.

이 회사 한승엽 사장은 "갑자기 일이 많아져 야근은 물론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도 분양가상한제를 피하려고 급하게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하면서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시공사와 조합이 일정이 촉박한 나머지 공사비 협상을 충분히 하지 못해 앞으로 분쟁의 '불씨'가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 남양주시 지금동의 한 재건축 단지는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갈등을 겪고 있다.

이달 아파트 분양물량은 엄청난 규모여서 이 같은 해프닝이 계속될 전망이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 수도권에서는 지난달 분양을 끝내지 못한 물량까지 이월돼 예년 분양물량의 10배에 가까운 7만여가구가 쏟아질 예정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주택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분양가상한제를 피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3개월 만 주다보니 각종 해프닝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선/이정호/박종서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