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형(李 啓 炯) < 한국표준협회장 lgh@ksa.or.kr >

명품은 좋다.품질과 디자인,브랜드가 뛰어난 만큼 누구나 갖고 싶어한다.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방,핸드백,시계 등 명품 하나쯤은 갖고자 하는 작은 사치를 즐긴다.그러다 보니 우리 국민은 명품에 대한 안목과 수준이 높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장신구에는 꽤나 신경을 쓰면서도 우리의 심리 표출 방식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가 배어 있는 하이터치형 언어 생활에는 아직 미흡하다.품위 있는 언어와 대화가 인격을 높이고,인격 높은 개개인이 모여 살맛나는 하이터치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직업에 대한 느낌도 크게 달라진다.평생의 반려자를 찾게 해 주는 '커플 매니저',다양한 위험을 막아 주는 '라이프 플래너' 등의 직업 명칭을 들을 때 새로운 시각에서 직업관을 재창조하게 해 준다.

언어는 사고와 행동을 규정한다.사실 우리가 많은 고민을 거쳐 최상의 언어로 아름다운 직업명을 창출할 수 있다면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다양화하고,직업의 귀천도 없애고,많은 젊은이들의 직업 선택 폭도 넓힐 수 있다.

하이터치 세계로 가기 위해 언어 사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대화다.프랑스 사람들은 식탁에서 문화 예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결속을 다진다.유대인들은 가급적 비즈니스 이야기를 피하며 품격 있는 대화 분위기를 조성한다.

얼마 전 수험생 자녀를 둔 어머니의 깊은 배려가 담겨 있는 대화 내용을 들었다.공부하던 자녀가 볼펜을 방에 떨어뜨리자 '떨어졌다'고 하지 않고 '방바닥에 붙었다'고 했다고 한다.예민한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서다.

수필가 피천득 교수는 '좋은 이야기가 나올 법한 곳이면 아무리 멀어도 한달음에 달려가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한다'고 했다.수준 높은 대화에서 주옥 같은 그의 수필의 모티브를 잡아 내었을 것이다.작가 칼라일과 시인 에머슨은 에펠탑 앞에 30분 동안 말없이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오늘은 참으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범인의 경지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하이터치 대화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사회의 디지털화가 진전될수록 대화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사람과 컴퓨터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저질 단어,언어,대화가 판을 친다.따뜻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미 묻어나는 좋은 품질의 말과 대화가 필요하다.연말을 맞이하면서 겨울 추위를 녹이는 품격 높은 문장이 담긴 따뜻한 연하장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