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코엑스 402호 세미나실에는 삼성전자 LG전자 모토로라 노키아 소니 현대자동차 GM대우 르노삼성자동차 등 쟁쟁한 대기업의 상품기획 담당자들이 총출동했다.

코팅재료를 납품하는 한 협력업체가 2008~2009년에 휴대폰과 각종 디지털 가전,자동차 등의 제품 컬러 디자인과 소재를 주도할 트렌드를 예측해 소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웅진코웨이 만도 등 중견기업과 플렉트로닉스 유티스타콤 등 중국 기업 등 전자제품 관련 업계 관계자 150여명도 참석했다.

이들은 모두 주최 측이 간청해서 모셔온 '공짜 손님'이 아니라 1인당 7만7000원이나 하는 참가비를 내고 자발적으로 온 '유료 청중'이었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파워를 지닌 업체는 국내 특수 코팅재료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에스에스씨피(대표 오정현)다.

이 회사는 전자 제품이나 자동차 내장재 겉면에 감성적인 색상을 입히거나 유해물질 발생을 차단하는 특수 코팅재료를 만들어 국내외 1500여개 업체에 공급한다.

영화배우 전지현이 거침없이 재킷을 벗어던지는 TV 광고로 잘 알려진 삼성전자 애니콜 '컬러재킷폰'이나 황금색 꽃과 나비 무늬가 새겨진 삼성전자 '하우젠 에어컨',빨간색 꽃 두 송이가 들어간 LG전자 냉장고 '아트 디오스' 등 최근 화려한 컬러와 디자인으로 업계에 화제를 몰고 온 제품들은 대부분 에스에스씨피의 코팅재료를 입고 탄생했다.

특수 코팅재료는 각종 기능성 물질들이 들어 있어 일반 도료.코팅재에 비해 쉽게 벗겨지거나 부식되지 않고 다양한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

전자파 차단이나 항균 등의 기능도 발휘한다.

2000년대 들어 IT(정보기술) 제품 전반에 걸쳐 성능 못지않게 디자인과 친환경성 등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특수 코팅재료 사용이 확대됐다.

에스에스씨피 오정현 대표(36)는 "현재 전자 제품의 경우 일부 저가 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특수 코팅재료를 사용한다"며 "자동차 내장재에도 고급 승용차를 중심으로 유해물질 발생 차단과 인테리어 효과 등이 뛰어난 코팅재료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에스씨피가 특수 도료재료 분야에서 절대 강자의 위치에 오른 것은 시장의 흐름을 미리 읽고 재빨리 기술 개발에 '올인'한 데다 기존 제품 도료 사업의 노하우를 잘 살려 사업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창업주인 오주언 회장(69)이 1973년 설립한 인쇄잉크.페인트 회사인 삼성화학페인트로 출발했다.

플라스틱 도료(페인트)를 생산하던 에스에스씨피가 코팅재료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96년. 미국 코넬대에서 재료공학(석사)을 전공한 오 회장의 장남 오 대표가 입사해 기술연구소를 세운 후부터다.

1998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져 일반직을 줄이는 와중에도 연구직은 15명을 추가 채용하고 40억원을 투입해 연구소를 신축하는 등 연구개발에 과감히 투자했다.

오 대표는 "고부가가치의 신소재 코팅재료를 만들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사활을 걸었다"며 "이 결과 1년여 만인 1999년에 고품질의 전자 제품용 특수 코팅재료를 국내 처음으로 내놓았다"고 회고했다.

이 회사의 최대 경쟁력은 30여년간 제품 도료 사업을 해오며 축적된 경험을 살려 2만 가지 이상의 색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고객사를 선도하는 색상 디자인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오 대표는 "모델 구상 단계부터 컨셉트에 적합한 색상을 제시해 고객사를 만족시킨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00년부터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납품하면서 안정 궤도에 올랐고 2003년에는 해외 기술을 이전받아 자동차 내장재 코팅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또 특수 코팅재료 성공의 여세를 몰아 개발에 착수한 LCD 광학필름 코팅재,PDP 전극 코팅 소재 등 전자부품 재료 사업이 2004년부터 본격화되면서 성장가도에 진입했다.

2003년 731억원이던 매출이 2006년 1587억원으로 연평균 30% 이상 증가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도 141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20.5% 늘어났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2002년부터 본격 진출한 해외사업 부문도 급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는 상하이 톈진 등 중국 4개 지역과 태국에 각각 생산법인을 세우고 현지 업체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 현지에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하이얼 등 기존 거래업체 이외에 소니 노키아 필립스 모토로라 등의 현지 공장에 제품 공급을 시작하면서 '글로벌 벤더'로 거듭나고 있다.

해외 자회사들의 매출은 2004년 122억원에서 지난해 390억원으로 증가했고 올해 7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초에는 독일 특수 코팅재 회사인 슈람의 지분 100%를 자금 910억원을 투입해 전격 인수했다.

슈람은 2003년 에스에스씨피가 자동차 내장재 코팅 사업에 진출할 때 기술이전을 해준 기술력 있는 기업으로 벤츠와 BMW 폭스바겐 아우디 등 자동차 제조사 등에 특수 코팅재를 공급하고 있다.

오 대표는 "올해 국내와 해외를 합친 매출이 2700억원가량 될 것"이라며 "내년에는 새로운 성장동력인 전자부품 재료 사업의 고속 성장세와 슈람(2006년 매출 799억원)의 계열사 포함으로 4700억원가량의 총매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