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국제유가 상승률은 66%. 100달러를 곧 돌파할 것 같은 거친 상승세만으로 보면 세계경제는 충격에 빠졌어야 한다. 하지만 인플레 우려가 가시화되는 것을 빼놓고는 '쇼크'라는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다. 주식시장이나 소비 및 기업활동이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포천은 이 같은 현상을 '석유방정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 2차 오일쇼크 때와 다른 '수요의 문제'

이란이 원유생산을 중단해 세계적으로 극심한 경기침체와 물가 폭등을 몰고왔던 1979년. 당시 유가를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배럴당 93~101달러 수준. 현재 유가는 이미 그 수준에 도달했다. 지난 5년간 3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국 증시는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하반기 들어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은 매달 0.1~0.6% 상승했다.

지난 3분기 기준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ㆍ2분기보다 높은 3.9%를 기록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소비 심리 냉각이나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주로 들여오는 두바이유도 90달러 선을 넘보고 있지만 지난 3분기 소비재 판매량은 오히려 전년 동기대비 8.5% 늘어났다.

이와 관련, 포천은 1, 2차 오일쇼크가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면 최근의 유가 상승세는 주로 수요 증가 때문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가격 상승 메커니즘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인도를 포함, 세계 경제의 탄탄한 성장세가 수요를 촉발시켜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고유가만으로는 경제가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 소비위축이 심각하지만 않다면 경기침체 가능성은 작다고 포천은 분석했다.

터키와 이라크 내 투르크반군과의 갈등 같은 지정학적 불안요인이 공급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급경로가 끊겨 발생했던 1, 2차 오일쇼크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대니얼 옐진 캠브리지에너지연구소(CERA) 대표는 "유가 급등이 세계 경제에 파장을 미쳤다기보다 세계 경제가 유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효율ㆍ인플레 통제능력 향상

1, 2차 오일쇼크를 교훈삼아 각국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대체연료를 개발하며 석유 의존도를 낮춘 것도 유가상승의 충격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다. 3차 쇼크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1달러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 양은 1981년보다 두 배로 늘었다.

높아진 국민소득도 고유가 충격을 줄였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선진 7개국의 평균 1인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원유량은 1980~1982년의 320~350배럴보다 많은 456배럴에 이른다.

소득증가가 유가상승세를 훨씬 앞질러 유가상승의 부담을 감내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걱정스런 분야는 인플레이션이다. 다만 오일쇼크 때처럼 충격파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2차 오일쇼크 여파로 미국 물가상승률은 1980년 14.8%에 달했다. 하지만 유가가 치솟던 지난 9월의 경우 연간 물가상승률이 2.8%로 최근 1년간 상승률 3%를 밑돌고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인플레 통제력이 높아진 점도 상대적인 물가안정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고유가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 통화량을 대폭 늘렸고 세계는 극심한 인플레와 장기 침체를 겪었다.

이에 비하면 최근 FRB의 경기 조절 능력은 훨씬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