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권삼수론과 집단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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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準亨 < 서울대 교수·공법학 >
풍문으로만 떠돌던 이회창씨의 출마설이 기정사실화된 듯하다.
대선정국에 돌연 폭풍이 몰아친다.
대권주자 진영에서는 저마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자 정신이 없지만,대중의 심경은 착잡하다.
이른바 '대쪽'의 이미지로 신망을 얻었던 그가 정계은퇴를 번복해 또 나온다니 이를 어떻게 이해할 건가.
언론에서는 벌써 여론조사를 벌이며 그 임팩트를 가늠하고 있다.
나온다는 것도 놀랍지만,나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60%에 달하는데도 지지율 20%를 상회하며 대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보다 앞서고 있는 데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사람들은 여론의 지지나 당선 가능성이 낮은데도 계속 대선에,총선에 출마하는 것일까.
또 왜 사람들은 탈당이나 경선불복,그리고 이회창씨의 출마를 배신과 변절의 굴레를 씌워 비난하는가,그러면서도 그런 부류의 정치인들이 나름 고정표를 가지거나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일까.
대권삼수론이니 경선불복 필패론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까닭을 캐면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에 도달한다.
정계를 은퇴했던 사람이 다시 등장해 대권을 잡은 일로 생긴 말이 삼수론(三修論)이지만,세 번 만에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한 어느 국회의원의 성공담도 있었으니 처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더욱이 다 이긴 싸움을 막판에 간발의 차로 놓쳐 정권을 빼앗긴 터에다 대권주자라는 사람들의 면면이 마뜩지 않고 또 능력이나 도덕성면에서 자신보다 낫다 할 수 없으니,유권자들이 마음을 열지 않겠는가고 기대했을 수도 있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달러경매'의 논리로 푼다면 출마포기에 따른 손실이 출마로 인한 위험보다 크거나 출마로 잃을 수 있는 것보다 당선으로 얻을 것이 항상 현저히 크기 때문에 베팅을 하지 않을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당선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되므로,아들 병역문제나 차떼기당 사건 같은 문제는 더이상 변수가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잊어버렸거나 용서했다고 여길 수도 있다.
또는 이명박 후보의 경우 도덕성 결함이 드러나도 지지한다는 비율이 여전히 높은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저 출마를 용인하겠지 기대할 수도 있다.
반면 과거 도덕성 문제를 따지느라 능력과 성과를 놓치고 말았다는,일종의 집단지성적 되새김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회창씨 출마의 변으로 이른바 '스페어 후보론' 또는 '보수 방위론'이 거론된다.
이명박 후보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낙마할 경우에 대비해 보수 진영도 복수의 후보가 필요하며 그 경우 자신이라도 보수세력의 구심점이 돼 현재의 집권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는 일만은 막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지만,사실 거기에는 매우 현실적인 근거가 있다.
'창사랑'이라 불리는 고정적 지지세력이 있고,출마 선언을 해야 세력과 자금이 모이고 또 대선이 총선과 끈끈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보수의 대표로서 종주권을 주장하는 한 그의 출마를 막을 길은 없다.
결국 관건은 유권자요 그들의 집단지성이다.
보수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보수세력이 단합해야 한다든가 분열하면 역사의 대죄를 짓는 일이라는 건 보수들의 뜻이지,정작 국민의 뜻은 아니다.
사람들의 바람은 다만 유능하고 가급적이면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는,앞으로 한국호를 성공으로 이끌 최소한의 자질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뽑는 것일 뿐이다.
유권자들 스스로가 각성해서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집단지성은 개인들의 협력과 경쟁에서 나온다.
집단지성이야말로 지역주의나 아무개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의 '○사모'들이 범하는 집단사고의 폐단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다.
집단지성을 형성하려면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결국 키는 유권자들이 쥐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나라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자유를 너무 지나치게 옥죄어 유권자들의 집단지성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가 되고 있는 건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이회창씨의 출마설이 기정사실화된 듯하다.
대선정국에 돌연 폭풍이 몰아친다.
대권주자 진영에서는 저마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자 정신이 없지만,대중의 심경은 착잡하다.
이른바 '대쪽'의 이미지로 신망을 얻었던 그가 정계은퇴를 번복해 또 나온다니 이를 어떻게 이해할 건가.
언론에서는 벌써 여론조사를 벌이며 그 임팩트를 가늠하고 있다.
나온다는 것도 놀랍지만,나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60%에 달하는데도 지지율 20%를 상회하며 대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보다 앞서고 있는 데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사람들은 여론의 지지나 당선 가능성이 낮은데도 계속 대선에,총선에 출마하는 것일까.
또 왜 사람들은 탈당이나 경선불복,그리고 이회창씨의 출마를 배신과 변절의 굴레를 씌워 비난하는가,그러면서도 그런 부류의 정치인들이 나름 고정표를 가지거나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일까.
대권삼수론이니 경선불복 필패론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까닭을 캐면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에 도달한다.
정계를 은퇴했던 사람이 다시 등장해 대권을 잡은 일로 생긴 말이 삼수론(三修論)이지만,세 번 만에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한 어느 국회의원의 성공담도 있었으니 처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더욱이 다 이긴 싸움을 막판에 간발의 차로 놓쳐 정권을 빼앗긴 터에다 대권주자라는 사람들의 면면이 마뜩지 않고 또 능력이나 도덕성면에서 자신보다 낫다 할 수 없으니,유권자들이 마음을 열지 않겠는가고 기대했을 수도 있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달러경매'의 논리로 푼다면 출마포기에 따른 손실이 출마로 인한 위험보다 크거나 출마로 잃을 수 있는 것보다 당선으로 얻을 것이 항상 현저히 크기 때문에 베팅을 하지 않을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당선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되므로,아들 병역문제나 차떼기당 사건 같은 문제는 더이상 변수가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잊어버렸거나 용서했다고 여길 수도 있다.
또는 이명박 후보의 경우 도덕성 결함이 드러나도 지지한다는 비율이 여전히 높은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저 출마를 용인하겠지 기대할 수도 있다.
반면 과거 도덕성 문제를 따지느라 능력과 성과를 놓치고 말았다는,일종의 집단지성적 되새김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회창씨 출마의 변으로 이른바 '스페어 후보론' 또는 '보수 방위론'이 거론된다.
이명박 후보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낙마할 경우에 대비해 보수 진영도 복수의 후보가 필요하며 그 경우 자신이라도 보수세력의 구심점이 돼 현재의 집권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는 일만은 막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지만,사실 거기에는 매우 현실적인 근거가 있다.
'창사랑'이라 불리는 고정적 지지세력이 있고,출마 선언을 해야 세력과 자금이 모이고 또 대선이 총선과 끈끈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보수의 대표로서 종주권을 주장하는 한 그의 출마를 막을 길은 없다.
결국 관건은 유권자요 그들의 집단지성이다.
보수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보수세력이 단합해야 한다든가 분열하면 역사의 대죄를 짓는 일이라는 건 보수들의 뜻이지,정작 국민의 뜻은 아니다.
사람들의 바람은 다만 유능하고 가급적이면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는,앞으로 한국호를 성공으로 이끌 최소한의 자질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뽑는 것일 뿐이다.
유권자들 스스로가 각성해서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집단지성은 개인들의 협력과 경쟁에서 나온다.
집단지성이야말로 지역주의나 아무개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의 '○사모'들이 범하는 집단사고의 폐단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다.
집단지성을 형성하려면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결국 키는 유권자들이 쥐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나라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자유를 너무 지나치게 옥죄어 유권자들의 집단지성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가 되고 있는 건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