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 I♥KOREA] 말레이시아 영화학도 이르완씨 "한국영화 아시아서 가장 뛰어나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예닐곱 명의 학생들이 보드판에 조명을 번갈아 쏘아가며 색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탐구하고 있었다.교수와 학생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스러운 복장과 분위기였지만 유달리 눈에 띄는 이방인이 한 사람 있었다. 교수와 친구들이 '일환'이라 불러 한국인인가 싶어 다시 봤지만 여지없는 동남아 출신 학생이었다.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긴 생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했지만 예의바른 동작과 목소리가 호감을 끌었다. 그는 마즈 이르완 빈 모하마드 아자니(28)라는 긴 이름을 가진 말레이시아 유학생이었다. '이르완'이 그냥 '일환'으로 불려진 것이다.
외신에서 '~ 빈(bin) ~'란 이름을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빈'이란 이름이 들어간 무슬림을 만난 것도 기자에겐 처음이었다. '빈 라덴'의 '빈'과 같은 뜻이다. 이르완은 '빈'이 남성을 지칭하는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이르완처럼 한류(韓流)의 경쟁력을 체득하려고 한국을 찾은 예술종합학교의 아시아 학생과 연구원은 총 57명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이르완이 돋보이는 것은 한류를 총망라한 분야라 할 수 있는 영상예술 쪽을 공부하고 있어서다. 2005년 10월 한국을 찾은 이후 2년간 한국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르완은 아시아에서 영화산업의 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흔들림없이 '한국'이라고 단언했다. 예를 하나 들었다. "예술종합학교 안에만 해도 영화 제작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여기서 만든 작품들이 부산과 부천,충무로 영화제 같은 한국 내 영화 페스티벌에 출품되고 있죠. 또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그리고 이창동 감독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쟁쟁한 감독들이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이르완은 우리 나이로는 스물아홉 살의 늦깎이 학생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늦게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말레이시아 국립예술학교에서 3년 과정의 영화 공부를 하고 2005년 봄부터 조교 생활을 했다. 말레이시아보다 기회가 많은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영화 제작에 뛰어들려고 얼마 안 되는 조교 월급을 조금씩 모았다.
그때 마침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국제 무용페스티벌에 참가한 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학교 측에 아시아 우수 예술인 양성 프로젝트(AMA)에 지원할 학생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해왔다. 당시 말레이시아에도 한류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완전 공짜'로 영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없이 지원했다. 학비 전액과 한국어 연수 비용,항공료가 나오고 한 달에 70만원씩 체재비를 지원한다고 했다. 이르완은 자신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직감했다.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자가 한 달에 70만원이면 꽤 풍족하겠다고 농을 걸자 금방 표정을 바꾼다. "그렇지 않아요. 매학기 말에 영화를 한 편씩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데 여기에 200만원 정도의 자비를 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르완은 동료들과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7~8명이 팀을 이뤄 품앗이 방식으로 한 학기 내내 서로의 작품 제작을 돕는다. 그렇게 한 학기가 후딱 지나가 버린다. 시간이 좀 난다 싶으면 시내 극장으로 달려가 최신작들을 봐야 하기 때문에 한눈을 팔 시간이 거의 없다. 예술종합학교 강의는 매우 빡빡해 외국인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교수들은 정해진 강의 시간을 곱절로 이어가기 일쑤여서 수업 부담도 크다.
이르완은 한국을 깊이 탐구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교외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요즘 그는 아시아 각국 출신의 사회운동가들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성공회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시아 학생 10여명과 아시아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을 주제로 세미나를 여러 번 가졌다. 그는 광주 망월동 국립 5ㆍ18 민주 묘지도 참배했다. 한국의 유교문화와 한국전쟁,한(恨)의 정서 등도 이해하려고 힘쓰고 있다.
그는 예술종합학교를 2년 더 다녀 학술사(일반 대학의 학사)를 딸 생각이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영화감독과 제작,후배 양성 등으로 활동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이르완은 "10년 뒤에는 한국 친구들도 중견 영화인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한국에 엄청난 동지와 네트워크를 갖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그의 영화인생의 뿌리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르완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평가했다.
이르완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꼭 배워가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합니다. 학생들은 물론 직장인들도 밤낮없이 일하고 공부하잖아요. 일벌레,공부벌레가 많은 사회 분위기를 말레이시아 문화산업에도 접목하고 싶습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