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후발주자로 세계 5위권에 머물고 있는 STX조선은 이번 인수ㆍ합병(M&A)을 통해 단숨에 순위를 두 단계나 끌어올린 데다 '블루오션'시장으로 꼽히는 크루즈시장에 '한국 조선'이 진출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 1조6000억원을 기록한 STX조선은 매출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아커야즈를 집어삼키며 현대중공업(12조5000억원),삼성중공업(6조3500억원),대우조선해양(5조4000억원)을 제치고 조선 '빅3'에 버금가는 위상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후발업체인 STX조선이 M&A를 통해 대역전극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인수자금은 사내유보금으로
이번 아커야즈 인수는 총 투자규모가 8억달러로 국내 조선업계의 해외 M&A 사상 최대 규모다.
STX조선은 23일 지분인수를 전담할 노르웨이 현지 특수목적회사(SPC)인 람베라AS를 통해 아커야즈 지분 39.2%(4456만5360주)를 인수했다.
인수자금은 조선 호황에 따른 풍부한 사내 유보금으로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설립 자본금 3억달러 중 2억달러는 STX조선이,1억달러는 STX엔진이 출자했으며 나머지 5억달러는 STX조선이 람베라에 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내 조선업체가 해외 조선소를 인수한 것은 대우조선해양이 1997년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를 인수한 게 유일하다.
당시 인수규모는 5000만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이번 아커야즈 인수는 세계 1위에 오른 지 갓 10년 된 국내 조선업계가 1950년대까지 세계 조선업계를 지배한 유럽의 심장부로 첫발을 내디딘다는 의미도 크다.
STX그룹 관계자는 "지분율이 40%에 달하는 최대주주이지만 당장 경영권을 행사하기보다는 당분간 노르웨이 측 현 경영진을 도와 회사 가치를 올리는 데만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즈선ㆍ해양플랜트 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
이번 인수는 M&A를 통해 국내 조선업계의 숙원 분야로 꼽히던 고부가가치 크루즈선(초호화 유람선)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일로 꼽히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10년 동안 공들여온 크루즈선 사업에 후발업체인 STX조선이 먼저 진출한 셈이다.
척당 가격이 5억~10억달러에 달하는 크루즈선은 세계 선박발주시장에서 금액기준으로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황금알'을 낳는 장사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유럽업체 가운데 해양플랜트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아커야즈 인수를 통해 관련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르웨이에는 세계 해양시추장비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업체들이 포진해 있어 이들 업체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STX의 전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큰 펀치를 한방 맞은 기분"이라며 "STX조선이 시행착오 없이 크루즈선을 곧바로 수주할 수 있는 데다 아커야즈사가 해양설비가 주요 발주처인 북유럽에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STX그룹은 대동조선(STX조선) 산업단지관리공단(STX에너지) 범양상선(STX팬오션) 등을 잇달아 인수해 조선ㆍ기계 분야의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