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에서 고객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대충 말하면, 피터 드러커가 1954년에 내놓은 획기적인 책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 이후라고 보면 된다.

이전까지 비즈니스 최후의 승자는 공급업자였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적으니 만들기만 하면 팔렸다.

기업들은 더 많은 고객을 얻기 위해 생산성 향상에만 몰두하면 됐다.

더 싸게 만들어 더 낮은 가격을 받을 수만 있다면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고객은 갑이 아니라 을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들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골라서 살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이 고객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도 같은 시기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고객이 왕이 됐다.

고객을 연구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이런 사고방식을 마케팅적 마인드라고 부른다.

이후 경쟁이 더욱 심해지면서 고객만족경영이 날개를 달고 유행했다.

또 회사들마다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면서 고객의 중요성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위치를 갖게 됐다.

정부도 공공기관도 사회봉사단체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영마인드는 곧 고객중심 마인드를 뜻하는 용어가 됐다.

그러나 최근 이 구조가 깨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고객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나타났다.

무엇일까.

세계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구글을 예로 들어보자.보통의 사람들은 구글에서 무엇인가를 '사지' 않는다.

구글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무엇인가를 '파는' 회사가 아니다.

직접 팔지 않기 때문에 고객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구글,위키피디아 등이 가장 중시하는 것,그리고 애플이 새롭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네트워크다.

참여자 사용자 파트너 소비자 협력사 광고주 등이 만드는 네트워크가 이제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회사의 경쟁력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통해 높이는 방식은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제법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혁신기업들은 자신들의 핵심 부문까지도 외부에 맡기고 있다.

변변한 인력도,건물도 없는데도 외부와 협력(collaboration)하면서 순식간에 힘과 덩치를 키우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들이 섬기는 네트워크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자체 진화하기까지 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고객이 비즈니스 최우선 고려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

1970∼1980년대 미국에선 전문경영인들의 도덕적 해이,기업 사냥꾼의 등장 등으로 주주들이 힘을 얻어가면서 주주들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1990년대 이후 비즈니스 모델만 들고 나타난 벤처기업들은 고객이 아니라 투자자들을 섬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타난 네트워크는 의미가 다르다.

전략은 물론이고 마케팅 재무 회계 등 경영전반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우리 회사이고 어디부터가 회사 밖인지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나타나는 변화다.

네트워크는 고사하고 고객 마인드조차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기업 현실이라 질적으로 달라지는 변화가 두려울 뿐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