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새 지도부 구성] 한발 뒤진 리커창‥친화력 뛰어난 '리틀 후진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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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은 두 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최연소 성장(省長)과 첫 박사학위 보유 성장이다.
1998년 43세의 나이로 허난성장 대리 겸 성부서기에 올랐다.
그의 능력이 일찍부터 주목받았다는 말이다.
그는 장학금이나 원고료를 받으면 동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선물을 보내 인간관계를 두텁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후 주석을 빼다 박았다고 해서 '리틀 후'로 불린다.
후 주석처럼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서기를 지냈고 또 그와 같은 안후이성 출신이다.
탁월한 친화력과 뛰어난 대인관계를 갖고 있지만 공식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고 또 튀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난의 현장에는 항상 나타나 진두지휘하곤 한다.
문화대혁명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곧바로 진학하지 못하고 고향인 안후이성 딩위안의 농업공사에 배치돼 농민생활을 체험했다.
2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베이징대학 법학과에 진학했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학에선 공청단 서기를 지낸 뒤 1983년 공청단 중앙위원회로 옮겼다.
당시는 후 주석이 공청단 중앙위 서기처 서기로 있던 시절이었다.
후 주석과의 동고동락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공청단의 1인자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지낸 뒤 1998년 6월 농업지대로 유명한 허난성으로 옮겨 당부서기,성장,당서기를 거쳤다.
후 주석이 승진할 때마다 리커창도 한 계단씩 올라갔다. 농업과 공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당서기로 일했다는 경험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최연소 성장(省長)과 첫 박사학위 보유 성장이다.
1998년 43세의 나이로 허난성장 대리 겸 성부서기에 올랐다.
그의 능력이 일찍부터 주목받았다는 말이다.
그는 장학금이나 원고료를 받으면 동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선물을 보내 인간관계를 두텁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후 주석을 빼다 박았다고 해서 '리틀 후'로 불린다.
후 주석처럼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서기를 지냈고 또 그와 같은 안후이성 출신이다.
탁월한 친화력과 뛰어난 대인관계를 갖고 있지만 공식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고 또 튀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난의 현장에는 항상 나타나 진두지휘하곤 한다.
문화대혁명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곧바로 진학하지 못하고 고향인 안후이성 딩위안의 농업공사에 배치돼 농민생활을 체험했다.
2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베이징대학 법학과에 진학했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학에선 공청단 서기를 지낸 뒤 1983년 공청단 중앙위원회로 옮겼다.
당시는 후 주석이 공청단 중앙위 서기처 서기로 있던 시절이었다.
후 주석과의 동고동락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공청단의 1인자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지낸 뒤 1998년 6월 농업지대로 유명한 허난성으로 옮겨 당부서기,성장,당서기를 거쳤다.
후 주석이 승진할 때마다 리커창도 한 계단씩 올라갔다. 농업과 공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당서기로 일했다는 경험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