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元澤 < 숭실대 교수·정치학 >

지난 15일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됨으로써 이제 12월 대통령 선거의 경쟁 구도가 확정됐다.지난 8월에 일찌감치 경선을 마친 한나라당에 비해 이처럼 대선(大選) 후보 선출이 늦어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그 때문에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만들어내고 손학규 후보를 불러오는 등 여러 진통을 겪은 끝에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서야 후보를 확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닌 것 같다.신당 경선 후보가 결정되자마자 문국현,이인제 후보 등 소위 범여권 후보 간의 단일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이처럼 범여권 단일화에 주목하는 것은 범여권 후보들이 이명박 후보에 비해 지지율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뭉치지 않으면 이기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요인이 고려된 때문이다.또한 5년 전 노무현과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로 인해 이뤄냈던 승리의 기억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에게 당장 시급한 일은 단일화보다 당내 화합일 것 같다.손학규,이해찬 후보 측과 경찰 고발까지 가는 격렬한 다툼 끝에 얻은 승리이기 때문에 경선 과정에서 생긴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뤄내는 일은 선거 과정에서 당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정 후보가 경쟁자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을 포용해서 화합을 이루는 일은 현실적으로 볼 때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범여권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명박이라는 후보의 존재보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커다란 실망감 때문일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해서 이번에는 누가 뭐라 해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려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다시 말해 이번 대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라고 하는 회고적(retrospective)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그런데 친노(親盧) 그룹이 아니더라도 여권의 후보로 당선된 정 후보로서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더욱이 노 대통령 하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정 후보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 속에는 또 다른 노무현이 아닐까,아니면 적어도 노무현과 같은 코드가 아닐까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그런 만큼 정 후보로서는 노 대통령에게 실망한 많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노무현 정부와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노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거리두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이미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대로 이해찬으로 대표되는 친노 그룹은 노무현 정부의 계승을 강조해 왔고,경선 결과에서 보듯이 당내의 22.2%가 그러한 입장에 동조했다.정동영의 차별성과 새로움을 강조하기 위한 '노무현 때리기'는 곧바로 이해찬으로 대표되는 당내 친노 그룹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고 당 화합은커녕 분열만 가속화될 수 있다.정동영 후보 당선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 역시 '상처받은 사람을 끌고 가야 한다'는 뼈 있는 지적이었다.이런 점에서 볼 때 정 후보는 당의 화합과 함께 자신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매우 어려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 범여권 후보로서 정동영 후보가 보여줘야 할 정치적 역량일 것 같다.이 때문에 문국현 후보나 이인제 후보 등 범여권의 다른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는 당 내부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난 이후에나 고려해 볼 수 있는 일로 보인다.정동영 후보의 선출로 이제부터 이명박 후보와의 불꽃 튀는 경쟁을 기대할 수 있게 됐지만 노무현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정치적 플레이어와 정 후보가 어떤 관계를 이뤄낼 것인지,이번 대선 과정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